




봉숭화 /SinEun
누덕누덕 헤진 담장 아래
내가 당신이 된 채
의식은 저물녘 붉게 태우고 있다
오래전 훅훅한 바람결에 길 하나를
꽃잎 속에 속삭여 접어 두었고
그 길 여정의 끝이 어디인지, 무엇인지
생애 내내 난 아직도 모른다
여름은 해마다 그 길을 찾으려
불그스레한 세월 피워 올리지만
끝내 입술에 닿을 수 없는
꽃의 빛깔뿐이었을까
스치듯 꽃빛의 꿈속 풋사랑이었을까
먼저 쓰러져 사라진 것은
계절이 아니라 지친 삶의 한숨일거였다
손끝에 물들였던 저녁의 붉은 추억은
아직 지워지지도 않았는데
사모_思慕에 지친 삶은 쓰러져 갔을 것
담장밑으로 짙게 푸르고 붉었던 것
어둠이 깊어질수록 더 선명해지던 존재였던 것
누구의 이름인지를
끝내 부르지 못한 그대 당신
사라질 수 없는 붉은 연정_戀情과 함께
지워지지 않는 기다림, 재회_再會
눈감고
사라진 세월 여미울 때 마다
또다시 아득하게 멀어지는 아련함들



봉숭아는 여전히 내 유년시절의 따스하면서도 시린 가슴이다.
처연한 가슴이 오래도록 시심에 얹혀져 체기로 남아 있었던 것이었을까.
해서 눈에 보여진 봉숭아는 흘깃 지나쳐 갈 수 없는 삶의 사랑같은 것이었다.
봉숭아 회억_回憶속엔 항상 다르지 않게 똑 같은 상념의 그림이 그려진다.
언제나 살풋하고 고즈녁한 내고향 판곡
내 영혼의 바다였던 무한여정의 어머니
맑고 소탈하게 정갈했던 장독대
다 헤진 밀짚 울타리 사이로 비쳐드는 눈부신 아침햇살,
밤새 훅훅한 여름밤 이슬 온몸에 받아 곱게 화사하고 정갈했던 마침내 ! 봉숭아 !
뒤뜰 정지문 빼곡이 열고 바라보았던 너 봉숭아 색시
왜 그리 섹시함도 없이 붉은 정열 가슴안고 수줍어 했는지
오랜 세월 삶의 여정속에 그 이유를 알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내밀한 당신의 소중함은 그대로 간직해야 할 것 같은 마음도 든다.
바로 이 모든 것들이,
두번 다시 삶 내내 사랑할 수 없는 아름다운 본질의 추억으로 남아있어,
그저 고마운 일이다.
항상 떠올리면 그렇듯이
봉숭아는 내게 있어 그저 청순하고 단순한 꽃이 아니라
유년시절, 내고향, 기다림, 약속,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세월의 빛깔까지 함께 품고 있기에
지그시 눈감고 자꾸만 어루어 보면 볼 수록 아름답고 결이 곱게 드러나는 존재,
바로 그런 꽃이며 내 마음이다.


내게 봉숭아는 단순한 꽃이 아니다.
어쩌면 나는 오래전 부터 봉숭아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봉숭아를 통해 내 지나온 시간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내 기억 속 봉숭아는 언제나 저물녘의 붉은 빛깔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붉음은 뜨거운 정열의 색은 절대 아닐것이리라.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살아온 연정_戀情의 빛깔이며,
진정 말없이 견뎌 온 머언 그리움의 처연한 색채이다.
담장 아래 수줍게 피어 있던 꽃 한 송이는 긴 세월을 품으며
어느새 고향집의 정갈한 장독대가 되고,
군데군데 삭아 헤진 밀짚 울타리의 넉두리가 되고,
마지막 기억 언저리엔 가슴 깊숙이 묻혀 사라지지 않은 애틋한 '그리움'이 되었다.


봉숭아를 떠올릴 때마다
꽃을 생각하기보다 먼저 어린 시절의 풍경을 만난다.
살풋한 바람이 지나던 고향의 뒤뜰과
새벽 이슬을 머금고 있던 꽃잎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맑고 순한 마음이 함께 되살아난다.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영혼이 머물러 있는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내 마음속 봉숭아에는 늘 '기다림'이 있었다.
다가갈 수 없었던 존재에 대한 여운,
끝내 전하지 못했던 시린 마음속 짝사랑같은 로망,
부르지 못한 이름 하나가 봉숭아 꽃빛처럼 오래도록 남아 있다.
해서 봉숭아는 이루어진 사랑의 상징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사랑의 기억으로
내 안에 여지껏 끈질기게 살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마다 피고 지는 꽃이건만
기억 속에서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연모_戀慕의 꽃이다.


세월이 흐르며 많은 것들이 바래고 사라졌지만,
봉숭아는 패랭이 꽃처럼 이유를 불문하고 더욱 더 선명해진다.
어쩌면 그것은 꽃 자체가 아니라
그 꽃에 사무친 오래된 기억들의 잔상에 어린 흔적때문일 것이다.
유년의 순수함과 고향의 온기, 풋사랑의 설렘과 아련한 상실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까지
모두 봉숭아라는 아련한 상징성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지금도 봉숭아를 보면 가슴 한쪽이 시리면서도 따뜻해진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다시는 되가질 수 없는 기억 때문일 것이다.
봉숭아는 내 삶이 잃어버려 거의 사라진 것들에 대한 기억이며
끝내 놓지 못한 추억이란 사랑이며
세월이 가도 죽을 때 까지 사라지지 않는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다.
어쩌면
지금도 그 꽃을 바라보며 어린 날의 나를 만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만남이 지금 이 순간처럼 가능한 한
봉숭아는 언제까지나 지지 않는 꽃으로 남아 있을 것이리라.


봉숭아 /김형준詩 홍난파曲
울 밑 에 선 봉 선 화 야 네 모 양 이 처 량 하 다
길 고 긴 날 여 름 철 에 아 름 답 게 꽃 필 적 에
어 여 쁘 신 아 가 씨 들 너 를 반 겨 놀 았 도 다
어 언 간 에 여 름 가 고 가 을 바 람 솔 솔 불 어
아 름 다 운 꽃 송 이 를 모 질 게 도 침 노 하 니
낙 화 로 다 늙 어 졌 다 네 모 양 이 처 량 하 다
북 풍 한 설 찬 바 람 에 네 형 체 가 없 어 져 도
평 화 로 운 꿈 을 꾸 는 너 의 혼 은 예 있 으 니
화 창 스 런 봄 바 람 에 환 생 키 를 바 라 노 라


위 가곡 봉숭아는 '봉선화'라고도 하며 1920년에 김형준 시인이 발표했던 詩다.
나라를 잃은 슬픔을 노래한 시를 작곡가(홍난파)의 바이올린독주곡 '애수'의 선율에 맞춘 곡이다.
1940년대 초에 반일사상의 노래라 하여 일제에 의하여 가창 금지가 되었으나,
지금은 널리 애창되고 있는 아름다운 한국 가곡중의 대표적인 한곡이다.
봉숭아의 또 다른 이름으로는 금봉화_金鳳花, 봉선화_鳳仙花, 지갑화_指甲花, 농동우 등이 있다.
바리톤 고성현 노래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g8ZvDsE7mWs
소프라노 김유섬노래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p9sSq6lc7Qw?list=RDp9sSq6lc7Qw
소프라노 임청화 노래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8oOcCAxOB7M?list=RD8oOcCAxOB7M



봉숭아 /박은옥
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이 밤이 다하면 질 터인데
그리운 내 님은 어딜 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밤만 지나면 질 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주던 곱디고운 내님은 어딜 갔나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걷혀 나타나듯
고운 내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났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걷혀 나타나듯
고운 내 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났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동영상 링크 주소 : https://youtu.be/qGCF6p0o8YA?list=RDqGCF6p0o8YA


봉숭아 ! 네 빛깔 모두의 혼속에 녹아
더없이 붉어 이루지 못한 사랑 더욱 애절하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