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으로 가는 여정, 그 에 대하여

 

 

 

원제 : "가족, 친구, 음식만 있으면 무너지지 않아”… 아흔살 현자의 깨달음

             김지수 작가 2026. 4. 1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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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아흔살 그 깨달은 현자의 말
세계적인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의 마지막 忠言
기술과 실업에 대한 답은 다양한 형태의 자기 고용 뿐
일자리 자꾸 줄어들지만,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아
마지막 인생의 쿼터엔… 좋았던 시간, 것들만 떠올라
삶 내내 항상 진실을 드러내고 살면 스스로 해방감 느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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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핸디 (Charles Handy 1932~2024)

 아일랜드 출신의 경영학자이자 사회사상가로, 현대 경영과 조직 이론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

 그는 단순히 기업 경영 기법을 연구한 사람이 아니라, "일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조직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음.

 

1932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으며, 영국의 University of Oxford에서 공부한 뒤,

세계적인 석유회사 Royal Dutch Shell에서 근무했음.

이후 London Business School의 교수로 활동하며 경영학을 연구하고 가르쳤음.

말년에는 생을 마칠때 여러가지 저술과 강연을 통해 미래 사회와 일의 의미를 꾸준히 탐구.

 

[대표적인 사상]

클로버 잎 조직(Shamrock Organization) 으로 찰스 핸디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개념.

미래의 조직은 세 개의 잎으로 이루어진 클로버처럼 구성될 것이라고 예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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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전문인력(Core Professionals) : 회사의 핵심 가치와 전략을 담당

외부 전문인력(Contractors) : 프로젝트별로 계약하여 활용

유연 노동력(Flexible Workforce) : 시간제, 임시직 등 필요에 따라 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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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 외주 개발, 프로젝트 계약 문화 등을 예견.

 

포트폴리오 인생(Portfolio Life)

한 사람이 평생 하나의 직업만 갖는 시대는 끝날 것이라고 주장.

예를 들어 직장인, 강사, 작가, 자원봉사자, 투자자 등등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삶을 제안.

 

도넛 원리(Doughnut Principle)

모든 업무를 세세하게 규정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봄.

도넛의 가운데 구멍처럼 규칙으로 정해지지 않은 영역을 남겨 두고,

그 부분은 구성원의 자율성과 창의성에 맡겨야 조직이 발전한다고 주장.

 

적절한 비합리성(The Properly Unreasonable Person)

그는 조직이 지나치게 효율성만 추구하면 인간다움을 잃게 된다고 보았음.

때로는 경제적 효율보다 신뢰, 인간관계, 공동체, 가치를 우선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만든다고 강조했음.

 

대표 저서

The Age of Unreason - 미래 사회와 일의 변화에 대한 대표작

The Empty Raincoat - 변화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역할을 탐구

The Hungry Spirit - 경제 성장보다 삶의 의미를 강조

Understanding Organizations - 조직 이론의 고전으로 널리 읽힘.

 

찰스 핸디의 핵심 메시지

"조직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일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수단이어야 한다."

그는 기술과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중심에 둔 조직과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음.

오늘날 원격근무, 프리랜서 증가, 플랫폼 노동, 평생학습, 워라밸, 다중 직업(N잡) 같은 흐름을

수십 년 전에 예견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현대에도 그의 통찰은 여전히 큰 의미를 갖고 있음.                 Sin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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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핸디  Charles Handy 1932~2024, 아일랜드의 경영학자, 사회사상가

찰스 핸디. 2022년 인터스텔라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2024년 12월 타계. 고인의 유작인 ‘아흔에 바라본 삶’이 지난 겨울에 출간되었다.

 

 

 

 

 

 

 

인터뷰어(김지수)로 살다 보니,

 

인생의 마지막 쿼터(75~100세)에 이르러서도

지적 폭발과 인격의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대 어른들과 대화할 행운을 얻었다.

 

특별히 가슴에 남는 세 분이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프랑스의 대문호 파스칼 브뤼크네르,

영국의 경영 사상가 찰스 핸디다.

 

 

이어령 선생과는 돌아가시기 전 사계절을 함께하며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인터뷰집을 냈다.

 

파스칼 브뤼크네르,

찰스 핸디와는 영혼에 자국이 남을 만큼 이메일로 깊게 대화했다.

이어령에겐 생명을, 파스칼에겐 욕망을, 찰스 핸디에겐 우정의 소중함을 배웠다.

 

 

특별히

찰스 핸디 손주들에게 전하는 편지 형식으로 된 책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를 읽고는 저는 열렬한 그의 팬이 되었다.

다국적 석유 기업에서 임원으로 오래 일했던 이 현자의 가르침은

문인이나 철학자의 가르침에 비해 더 현실적으로 활활하게 생활이고 구체적이다.

 

경영사상가로서 격변하는 기술 시대에도

‘사랑, 공정, 우정’ 같은 삶의 근원적인 질문은 바뀌지 않을 거라고 조언했다.

기술과 실업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다양한 형태의 *자기 고용뿐이니,

일찍부터 차분하게 *포트폴리오 라이프’ 확립해서 살라고 권유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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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고용_Self-employment

다른 회사나 기관에 고용되어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업이나 전문 기술을 활용하여 스스로 일하고 소득을 얻는 형태를 말함.

쉽게 말하면 자신이 자신의 고용주가 되는 것. 흔히 자영업자를 지칭하는 것임.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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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개인 택시 기사

프리랜서(디자이너, 번역가, 작가 등)

개인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농업이나 어업을 직접 경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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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회사에 취업하여 월급을 받는 직장인은 임금근로자로 분류되며 자기 고용이 아님.

 

*포트폴리오_portfolio

자신의 경력, 경험, 실적, 작품 등을 한데 모아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는 자료 .

간단히 말하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증명하는 자료 모음"임.

예를 들면

취업 포트폴리오: 프로젝트, 자격증, 경력 등을 정리한 자료

디자인 포트폴리오: 제작한 디자인 작품 모음

개발자 포트폴리오: 개발한 프로그램, 웹사이트, 앱 등을 정리한 자료, 등등.

즉, 포트폴리오는

자신의 실력과 성과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만드는 문서나 자료집.              Sin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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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했던 마지막 인터뷰에서 찰스 핸디는

경영 사상가로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친구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험난한 코너링을 돌 때마다

리스크를 함께 질 동지들이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더라는 그의 말은 세상에 큰 울림을 주었다.

 

 

‘인생의 마지막 쿼터에 이르러도 아쉬움이 없느냐?’는 나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이러했다.

 

아쉬움이라니요!

침대에 누워 있다 보면, 생의 좋았던 시간이 떠오릅니다.

세상엔 내가 누린 좋았던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아요.

새소리, 봄에 피는 꽃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나무들...

기쁨은 절대 셀 수 없는 것들이죠.

숫자가 없으니 정말로 멋진 기분입니다.

천국이 이런 곳이겠지요.”

 

 

피터 드러커‘천재적인 통찰력을 현실에 구현한 사람’이라고 치하했던 찰스 핸디.

그가 더 오래 세상에 머무르길 바랐으나, 그의 유작과 함께 유고 소식을 접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세상의 혼란을 지켜보며 쓴   찰스 핸디의 유작 ‘아흔에 바라본 삶’

 

 

 

 

 

 

 

찰스 핸디의 유작 ‘아흔에 바라본 삶’을 가슴에 품고 뭉클한 마음으로 읽었다.

생애 마지막 시간을 그는 영국의 시골 노퍽 들판의 한가운데서 마음껏 축하하며 살았다.

가족들과 정원에 나무 세 그루를 심어 가꾸었고 냉장고엔 샴페인이 가득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요양사가 요리해 주고 약을 먹여주니,

왕족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와인을 곁들여 식사할 땐 운 좋은 인생을 살았음에 감사를 표했다.

생전에 그의 아들 스콧 핸디는 아버지 찰스 핸디를 보며 이렇게 감탄했다고 한다.

 

 

 

“만약 노년이 이런 거라면 어서 늙고 싶네요!”

 

 

지구에서 가장 다정한 현자,

찰스 핸디의 말년에 고인 지혜의 우물이 이토록 달고 시원해  사후 인터뷰를 기획했다.

그의 유작 ‘아흔에 바라본 삶’을 바탕으로 한 이 가상의 대화는 한국인들에게 전하는 그의 고별 인사로,

핸디 선생의 아들 스콧 핸디가 아버지를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아흔에 바라본 삶’은 어떤 모습일까.

 

 

 

 

 

 

 

아흔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뇌졸중 후유증으로 몸을 움직이는 게 좀 불편하지만,

그 외에는 여전히 넘치는 의욕으로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입니다.

잘못한 일은 사과했고 내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는 스스로 용서했어요.

 

 

 

찾아온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나요?

 

세 가지입니다.

노인이라면 인생을 즐기세요, 너무 늦게 미루지 마세요.’

중년이라면 젊은 사람들이 변화를 이끌도록 돕고, 되도록 빨리 그 변화를 수용하세요.’

청년이라면 때론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선생의 청년 시절 경험담을 들려주시지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다국적 석유회사 셸에 지원했습니다.

처량한 표정으로 근무지로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며 어머니가 그러시더군요.

“걱정하지 마라. 모든 게 다 네가 쓸 책의 소재가 될 거야.”

“책이요? 저는 석유회사 임원으로 부자가 될 거예요.”

어머니는 다행히 저보다 저를 더 잘 아는 분이었어요.

저는 보르네오섬에 근무하며 미국의 경영 관련 서적을 한 무더기 사서 읽기 시작했어요.

읽다 보니 내가 훨씬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고,

쓰고 보니 저 스스로 꽤 괜찮은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영 이론에 제가 겪은 참담한 실수담을 더했고

‘자신의 실수보다 남의 실수에서 배우는 게 훨씬 낫다’고 설득했지요.

책은 놀랍게도 성공을 거뒀고 그렇게 저는 작가가 됐습니다.

제가 탄 기차가 석유회사 셸에 데려다줬으면 했는데

그 기차는 저를 펭귄 출판사, BBC 방송국으로 데려갔습니다.

저는 손주들에게도 이야기하지요.

“네 눈에 흥미로워 보이는 기차가 있다면 그저 올라타서 어디로 데려가는지 지켜봐라.”

 

 

 

때론 잘못 탄 기차가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다 준다.

 

 

 

 

 

언제 해방감을 느꼈습니까?

 

서른 셋이 되었을 무렵이었어요.

저는 제가 대머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어느 날 직설적인 제 이웃이 말하더군요.

“찰스, 당신이 대머리라는 걸 알죠?

우리도 모두 알아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빗질로 가려서 대머리가 아닌 척하는 건 부끄러운 거예요.

직한 모습으로 다녀요.

엄청난 해방감을 느낄 거예요.”

노부인이 정곡을 찌르는 바람에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싹둑 잘랐습니다.

솔직히 삶이 정말 편해졌어요.

머리카락을 말릴 필요 없이 수건으로 닦으면 햇볕이 마무리해 줬습니다.

하루를 준비하는 시간도 줄었어요.

더 이상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 척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꼽은 첫 번째 미덕은 진실이었습니다.

진실을 말하면 해방감이 느껴지고 시야가 더 맑아집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입니까?

 

진실이 곧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이 곧 진실입니다.

수학자는 짧은 방정식이 우주의 질서를 담고 있을 때 아름답다고 합니다.

목수는 나무의 이음새를 보고 “참하다”고 하지요.

저는 꼭 맞는 비유를 발견하면 진실과 아름다움을 느껴요.

모두 잘 맞고 제대로 작동하면, 그것이 아름다움이 됩니다.

 

 

 

교수 시절 경영학과 학생들에게는 무엇을 가르쳤나요?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들더라도

가능한 공개적으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요.

그렇게 하면 더 호감 가고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답니다.

더불어 좋은 경영의 본질은 결국 상식이라는 것도 학생들이 깨우치길 바랐습니다.

 

나 자신을 축하할 생각은 없지만 노년 그 자체는 축하하고 싶다는 찰스 핸디.

 

 

 

면접을 앞둔 청년에겐 어떤 조언을 하시겠어요?

 

면접관이 더 많이 이야기하도록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질문을 준비하고 계속 던져보세요.

연구 결과에 따르면 면접관이 많이 말할수록 면접자는 더 호의적으로 평가받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받았다면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00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 줄 수 있나요?”이렇게 말입니다.

장담컨대 호감도가 서너 배는 올라갈 겁니다.”

 

 

 

아내의 어떤 점을 존중했습니까?

 

집을 살 때든 식당을 고를 때든 저는 아내의 직감을 존중했어요.

집이나 식당의 공기를 감지하고

별로예요. 이 집은 아니예요. 여기서 식사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할 때마다

그녀의 의견을 따르는 삶을 살았어요.

아내는 불확실함 속에서도 재앙과 온기를 간파하는 힘을 지닌 사람이었어요.”

 

 

 

혹 악운도 행운으로 바꿀 수 있습니까?

 

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났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연습을 많이 할수록 운은 더 좋아집니다.

석유 회사 셸에서 근무할 때 저는 위기 상황을 예측하고 대응하는 모의훈련을 하곤 했어요.

가령 중동의 정치적 붕괴 같은 참사가 일어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아주 꼼꼼히 대비했지요.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전 저는 우리 부부 둘 중 한 사람이 장애를 갖게 될 가능성을 생각해서

집안에 개인 요양 공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지금 저는 그곳에서 아주 편안히 지냅니다.

대비책을 세워두면 재난이 닥쳤을 때 버텨낼 수 있어요.

제대로 준비하면 운은 긍정적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난 속에서도 삶이 유지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이탈리아 마을 광장에는 남녀가 열띤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정치 이야기를 할까요?

아닙니다.

일요일에 먹을 점심 메뉴에 관한 이야기죠.

삶이 제대로 굴러가는 데 필요한 건 3F입니다.

family 가족, friend 친구, food 음식.

이 세 가지가 잘 유지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인생은 계속됩니다.

 

가족, 친구, 음식. 세 가지만 유지되면 인생은 계속 된다.

 

 

 

요즘처럼 변동성이 큰 세상에선 어떤 기업이 흥하고 어떤 기업이 쇠할까요?

 

당신이 리더라면

조직 안에서 새로운 것을 꿈꾸는 사람은 그냥 내버려두세요.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생존 이상의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오직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은 실패하기 마련이지요.

기업도 사람도 이기적이면 오래 못 갑니다.

은연중에 서로가 존재의 안전망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낮은 직급의 직원을 함부로 하는 문화가 있다면 그 기업은 위험합니다.

아무리 낮은 직급이라고 해도 누구든 스패너를 던져 일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어요.

미미한 사람이라도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친구라고 했는데, 그 생각은 변함이 없는지요?

 

그럼요. 뇌졸중을 앓은 후 몇 년 동안 저는 사실상 독방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내 소유의 아파트가 편안한 감옥이었던 셈이지요.

그 시간을 보내면서 깨달은 건,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려면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친구란 어떤 모습입니까?

 

좋은 친구란

당신의 단점을 전부 알면서도 여전히 당신과 점심을 같이 먹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서로의 생일과 자녀를 알고,

과거와 미래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당신은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해도 됩니다.

그 친구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점심을 함께하세요.

진정한 친구는 7명이 이내면 족해요.

최고의 팀인 가족도 우정으로 묶인 팀입니다.

 

 

 

2018년에 먼저 타계한 아내 엘리자베스찰스 핸디의 최고의 친구였다.

 

 

 

선생에게 가장 좋은 친구는 누구였나요?

 

당연히 아내 엘리자베스였어요.

제 아내는 우정의 달인이었어요.

물과 거름을 주며 우정을 소중하게 가꾸며 살았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들은 가장 큰 칭찬 또한 ‘당신은 내 가장 친한 친구야’예요.”

 

 

 

선생은 결혼 생활 중 몇 차례 계약 갱신을 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쉰 살에 직장을 은퇴하고 독립 강연자가 되었을 때, 아내는 선생의 에이전시 역할을 했지요.

두 번째, 아내가 쉰 살에 본격적인 사진작가 일을 시작했을 때는, 선생이 조력자로 나섰고요.

20년간, 6개월을 주기로 부부가 번갈아 상대의 뒷바라지에 전념했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다정하고 공정한 사생활이 어떻게 가능했나요?

 

노력하면 됩니다.

균형을 유지하는 데는 각자의 공간도 중요했어요.

아내는 원만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 침대는 하나로 충분하지만,

욕실, 작업실, 서재는 두 개가 필요하다고 했고 그 생각은 옳았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공간으로 인해 자기로 존재할 수 있었어요.

세 번째 시기인 75살부터 아내가 죽기 전까지, 우리는 함께 봉사했어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아침 식사에 초대해 시간을 나눠주었지요.

내가 얻는 것만큼 상대방도 얻는 관계가 오래갑니다.

공평해야 오래 가지요.

비즈니스도 정치도 그 룰이 중요해요.

양쪽이 모두 이겼다고 느낄 때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도 커져요.”

 

 

 

갈수록 합의나 협상 같은 단어가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당신이 부디 고단한 협상을 많이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길 바랍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이익을 다툴 일이 생긴다면

상대방도 당신만큼 얻어간다고 느끼게 하세요.

상대방을 신뢰할 수 없다면, 그건 상대가 충분히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더 주세요. 행운을 빌어요.”

 

 

 

가정용 도우미 로봇과 인간의 우정을 다룬 영화 ‘로봇과 프랭크’의 한 장면

 

 

 

경영 사상가로서 일의 미래는 어떻게 될 거라고 보세요? 요즘엔 AI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때문에 세상이 소란스럽습니다.

 

새 기술이 일상이 되는 데는 30년이 필요해요.

본격적인 AI시대가 되면

많은 인간이 IA(Individual Assistant 인공지능의 개인 보좌관)가 될 거예요.

인간의 역할은

3C-창작가(Creatives), 간병인(Carers), 관리인(Custodians)으로 국한될 거라고도 합니다.

어떤 범주에 속하든 기술과 실업에 대한 해답은, 다양한 형태의 자기 고용입니다.

노동이 계속되려면 노동의 형태가 달라져야죠.

40년 전 지금처럼 실업률이 높았을 때 저는 ‘일의 미래’라는 책을 출간했어요.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지만, 여전히 세상에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다’고 주장했지요.

우리는 그 일을 직접 찾아 저마다 작은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이지요.

아내의 격려에 힘입어 저도 하나씩 실천해 나갔습니다.

급여와 사택을 포기하고 프리랜서 작가와 강연자로 나섰어요.

프리랜서 작가나 배우만큼 불안정한 직업도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 제 직업에 만족하게 됐고, 셸에서 받았던 연봉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니 한 번쯤 혼자서 날아보라고 권하고 싶군요.

 

 

 

경기는 갈수록 나빠지고 업계엔 한파가 이어지는데도요?

 

한동안 고군분투하겠지요.

저도 그랬어요.

하지만 막상 시도해 보면 날씨가 보기만큼 춥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상사 없는 삶이 꽤 즐겁다는 것도.

다만 만약 마흔이 넘었다면 이륙하기 전에 주택담보대출부터 갚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맞닥뜨린 외로움과 게으름은 어찌할까요?

 

재택근무의 요령을 저는 장인에게 배웠습니다.

어느 날 퇴역 대령이었던 장인이 찾아와서 점심을 함께한 후 일어서려는 제게 물었습니다.

“설마, 자네 오후에도 일하려는 건 아니겠지?”

군대에서는 아침 일찍 기상해서 오전에 군사 훈련 등 그날 해야 할 모든 일을 끝낸다고 하더군요.

점심에는 칵테일을 두 잔 마시고 오후에는 스포츠를 즐기고 저녁에는 부대 내 클럽에서 사교를 한다고요.

그래서 저도 그 방식을 따라 해보기로 했습니다.

오전에 집중해서 일하고 점심시간에 가볍게 한잔하고 오후에는 운동을 했습니다.

저녁에는 사람들과 어울렸어요.

균형 잡힌 삶을 위한 합리적인 이 방식을 당신에게도 권합니다.”

 

 

 

현관 벨이 울리면 항상 문을 열어주어라. 누군가 도움이 필요해 찾아왔을지 모른다.

 

 

 

아버지에겐 무엇을 배우셨습니까?

 

‘현관 벨이 울리면 항상 문을 열어주어라. 누군가 도움이 필요해 찾아왔을지 모른다.’

아직도 기억나는 아버지(찰스 핸디)의 말씀중 하나입니다.

 

 

 

자녀들은 어떻게 키우셨어요?

 

열 살 무렵 저는 아일랜드 시골길을 걸어 혼자 하교했던 것을 특별하게 기억합니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뒤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챘지만,

어쨌든 혼자 해냈고 집에 돌아오니 특별한 케이크가 차려져 있더군요.

그 경험은 하나의 원형이 됐습니다.

제가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키울 때도 스스로 결정하도록 독려했고,

해낼 때마다 특별한 차와 케이크를 주었어요.

아이들이 연애하고 직업을 구하고 초보 부모가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간섭하지 않으려고 조심했어요.

우리 부부의 원칙은 하나였어요.

‘묻지 않는 한 절대 조언하지 않는다.’

책임지는 행위는 성장에 중요하고,

그런 결정권을 가로채는 건 매우 부도덕하기에 자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가슴 벅찬 보람은 언제 느끼셨나요?

 

언젠가 시골 별장에서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서툰 필체로 단 한 문장만 적혀 있었어요.

“찰스 핸디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그날 하루가 날아갈 듯 행복했습니다.

고인이 된 엘리자베스 여왕은 버킹엄 궁전에서 훈장을 수여할 때

항상 세심하게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감사를 표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울림을 주는 말이 감사입니다.

단, 가능하다면 이름을 반드시 언급하길 바랍니다.

 

 

 

가족들과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까?

 

아이들은 같이 있으면 즐거워요.

자기 일도 잘합니다.

새로 얻은 자식인 양 나를 돌보는 능력도 대단해요.

내가 한 일은 없지만 아이들이 잘 자라준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내 삶을 질서 있게 정돈해 주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무엇부터 하십니까?

 

큰 소리로 외칩니다.

“오! 멋진 날이구나.” 그러고는 기뻐하며 크게 웃지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말을 건넵니다.

“어이, 나이 든 양반. 당신은 이미 다 겪었네.

그래도 아직 살아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생과 사의 균형조차 탁월했던 영국의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

 

 

 

마지막으로 곧 만나게 될 신, 헤어질 세상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부탁합니다.

 

저는 지금 영국의 시골 노퍽의 들판 한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듭니다.

온갖 악천후에 시달리지만, 저는 이 집이 정말 좋습니다.

머지않아 저는 이 세상을 떠날 겁니다.

당신이 도와준다면 정말 감사히 여기겠습니다.

모든 것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입니다.

호두나무도,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내 아내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작별을 고합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 모든 것이 끝나가는 그 특별한 시간을 마음껏 누리길 바랍니다.

당신도 나처럼 풍성한 우정을 누리고 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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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적 미치광이 잔혹한 착취

 

 

부제 : 레오폴트 2세, 그 악마의 화신이 불러온 잔혹한 인간 학대사

원제 : “10대 소녀가 나이 60인 저를 사랑한다고 합니다”···꽃뱀이 남긴 비린내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6. 4. 4. 09:54

 

 
 
 
 
 
 
 
 

레오폴트 루이 필리프 마리 빅토르(프,Léopold Louis Philippe Marie Victor, 1835~1909)

레오폴트 2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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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일반적으로 '레오폴트 2세'라고 호칭 및 통칭.
1865년부터 1909년까지 벨기에를 통치한 국왕으로, 
식민지 지배와 관련해 역사상 가장 잔혹한 통치로 논란이 많은 인물 가운데 한 명.

벨기에의 제2대 국왕으로 재위하며 벨기에의 산업과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관심을 가진 인물.
개인적으로 아프리카 중앙부의 '콩고 자유국'을 자신의 영지처럼 소유. 
이는 벨기에 국가의 식민지가 아니라, 당시에는 국왕 개인의 소유지화 한것임.

고무와 상아를 대량으로 수탈하기 위해 강제노동 제도를 운영했고, 
이를 거부하거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주민들에게 잔혹한 처벌이 가해졌음.
이 과정에서 수많은 콩고 주민이 사망하거나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며, 
정확한 희생자 수는 논쟁이 있지만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지자 
1908년 콩고 자유국은 국왕 개인의 소유에서 벗어나 '벨기에령 콩고'가 되었음.

오늘날 레오폴트 2세는 
벨기에의 도시 개발과 기념 건축물을 남긴 군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콩고에서 자행된 식민 통치와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 때문에 훨씬 더 강한 비판을 받는 인물로 기억. 
특히 최근에는 그의 동상 철거나 이전, 식민지 역사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음.                        SinEun ==========================================================================================

 
 
 
 
 
 
 
 

그의 황혼은 젊은이의 여명보다 밝고 뜨거웠다.

늙어빠진 몸뚱이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 존재가 있어서였다.

심장은 사춘기 소년처럼 자주 두근거렸고, 볼은 자주 발그레했다.

더 이상의 사랑, 더 이상의 쾌락은 무의미하다는 *자조는 사라졌다.

 

 

나이 65살이 어떻단 말인가.

16살, 그야말로 꽃다운 소녀가 옆에 있는데.

하얗고 고운 살갗을 내어줬다는 이유만으로, 노인은 소녀에게 모든 걸 주고 싶었다.

세상 최고의 여자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으리으리한 재산, 범접할 수 없는 권력도 모두 그녀의 품에 안겨주고 싶을 따름이었다.

 

 

할아버지와 손녀뻘의 사랑은 *노망이나, *주책의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는 누군가의 피로써 대체(형성)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벨기에의 왕 레오폴트 2세어린 애인 캐롤라인 라크루아의 이야기를 해보련다.

 

경제사에 피비린내를 진하게 남긴 비극이기도 했던 이야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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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조_自嘲 : 스스로 자기 자신을 비웃음.

노망_老妄 : 늙어서 *망령을 부림

                    망령_妄靈 : 늙거나 정신이 흐려 말이나 행동이 정상에서 벗어난 상태

 

주책 : 일정한 생각이 없이 되는 대로 하는 짓을 이르는 말. 주책바가지, 주책머리 (순 우리말)

                                                                                                                                     Sin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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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당신의 돈을.” 쿠엔틴 마티스 ‘어울리지 않는 여인들’. 15세기 작품.
 
 
 
 
 
 
 
 

콩고에서 희망을 찾다

레오폴트 2세가 벨기에의 국왕으로 즉위한 건 1865년이었다.

그는 자주 조바심이 났다.

주변국들이 세계 열강으로 융성했으나, 벨기에는 여전히 그저 그런 소국이어서였다.

흔하디흔한 식민지 하나 없다는 사실에 그는 자주 주눅 들었다.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에 어엿한 식민지를 건설해서,

‘제국’ 벨기에로 나가야 한다고 레오폴트는 사자후를 토했다.

 

 

그의 말은 언제나 의회의 벽에 부딪혀 메아리로 사라졌다.

선대 레오폴트 1세가 추진했던 식민지 건설이 모두 실패한 전례가 발목을 잡았다.

“저 양반 아직 저러고 있네”라는 비아냥이 잇따랐다.

 

 

“우리 벨기에도 식민지 하나 쯤은..." 1875년 레오폴트 2세 초상화.

 
 
 
 
 

의기소침한 벨기에 국왕 앞에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헨리 모턴 스탠리라는 자로써 미국인 탐험가였다.

아프리카를 제집 드나들 듯 해, 탐험에 이골이 난 남자였다.

그가 레오폴트 2세를 달콤한 말로 꾀었다.

아프리카 콩고분지는 아직 열강의 마수가 뻗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오호, 쾌재라.

벨기에가 나아가야 할 길로 레오폴트 2세의 눈이 트였다.

 

 

탐험가 스탠리가 다시 아프리카에 발을 디뎠을 때, 그는 더 이상 일개 탐험가가 아니었다.

레오폴트 2세가 그를 공식 대리인으로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벨기에 국왕의 공식 대리인’이라는 반짝이는 직함이 무색하게도

그의 가방에는 싸구려 면직물과 색이 바랜 유리구슬, 그리고 진(gin) 몇 병뿐이었다.

스탠리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이 가방 하나로 아프리카의 거대한 땅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아프리카에 좋은 땅이 있는데요” 미국인 탐험가 헨리 모턴 스탠리

 

 

 

 

레오폴트, 마침내 식민지를 갖다

스탠리의 상술은 봉이 김선달과 견줄만한 것이어서, 그는 글과 셈을 모르는 부족장을 구슬렸다.

술을 먹여 알근하게 취한 추장들에게 면직물과 유리구슬을 건넸다.

종이 문서에 몇 글자만 끄적거리면 된다는 스탠리의 말에 속아 사인하고 말았다.

벨기에판 봉이 김선달에게 당한 부족장은 450명에 달했다.

 

피부 흰 사나이가 가져온 ‘악마의 계약서’에 사인한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가 되었.

토지의 소유권, 교역의 독점권, 지역의 통치권이 모두 이렇게 넘어가버렸다.

 

 

 

 “망고보다 맛있는 콩고~. ” 1884년 베를린 회의에 참석한 레오폴트 2세를 묘사한 카툰(만화)의 비유적 한 컷.

 

 

 

 

콩고 분지의 거대한 땅이 제 것이라는 사실에 우쭐했지만,

레오폴트 2세는 몸을 낮게 숙였다.

 

식민지를 갖겠다면서 흥분해 날뛰다가

강대국들에 두들겨 맞고 찌그러진채 망조가 났던 아버지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레오폴트 2세는 영리한 아들이었으므로,

그는 방향키를 아버지의 것과 정반대로 가져갔다.

“콩고 분지는 벨기에의 땅이 아닌 레오폴트 2세의 사유지일 뿐이며,

왕의 목표는 이 땅에서 노예제도를 몰아내고 자유무역을 뿌리내리기 위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냈다.

 

 

영국, 프랑스, 독일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은 레오폴트 2세의 말을 수긍했다.

여기에는 정치 공학적 계산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콩고라는 땅을 완충지대로 만듦으로써 열강들끼리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할 수 있어서였다.

그리하여

‘콩고 자유국’(Congo Free State)이 출범했다.

 

여기서 ‘자유‘레오폴트 2세이 땅을 착취‘자유’를 의미했다.

 

 

 

 “우리도 식민지 하나는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연설하는 레오폴트 2세.

 
 
 
 
 

고무의 발견으로 웃다

보기 좋은 떡도 가끔은 맛이 고약한 경우가 있는데, 콩고가 그랬다.

넓은 땅은 떵떵거리기 좋았지만, 실속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주민을 윽박질러 뽑아 온 상아 몇 개로는 수지맞지 않았다.

 

레오폴트 2세는 모골이 송연했다.

재산이 눈에 띄게 줄고 있었다.

식민지 개척으로 벨기에를 제국으로 만들겠다는 꿈은 노망난 늙은이의 노욕으로 증명되는 듯했다.

적어도 1888년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존 보이드 던롭은 북아일랜드의 수의사였다.

그의 아이디어 하나가 세상을 바꿨다.

19세기 후반 공기 주입식 타이어를 발명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자전거와 자동차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름하여 바로 ‘모빌리티 혁명’이었다.

 

 

“걷지 말고 앉으세요 룰루~” 존 보이드 던롭.

 

 

 

빠르게 달려가는 자전거 안장에서 사람들이 미소지을 때, 레오폴트 2세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타이어를 만드는 고무의 원산지가 아메리카의 브라질과, 아프리카의 ‘콩고‘였기 때문이었다.

레오폴트 2세의 땅에 단비가 내려서, 돈에 목말라 주름진 그의 얼굴도 급작스레 윤기가 흘렀다.

 

레오폴트 2세기쁨의 눈물콩고 땅에서는 피로 변했다.

그가 칙령을 발표해 콩고의 전 원주민들에게 고무 상납을 의무화했다.

어리둥절해하는 원주민 앞에 나타난 건 철갑을 두른 백인 군인들이었다.

군인들은 겁에 질려 쭈뼛쭈볏 하는 콩고 원주민 남자들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할당된 분량을 채우라는 의미였다.

 

콩고 주민의 선택지는 세 가지였다.

채찍을 맞아 피를 흘리거나, 고무 노동으로 땀을 흘리거나, 아니면 둘 다 흘리거나.

 

 

 

콩고 노동자들이 고무나무 수액을 체취하는 모습.

 

 

 

 

 

지옥이 펼쳐지다

레오폴트 2세의 사병들은 포스 퓌블리크라고 불렸다.

우리 말로는 '공권력'이라는 의미다.

그들은 이름과는 달리 단 한 사람을 위한 힘이고 총이고, 칼이었다.

 

레오폴트 2세는 쏟아져 들어올 돈의 무게를 상상하면서 황홀했다.

장밋빛 미래에 몸이 안달복달해서 포스 퓌블리크를 자주 득달하고 채근했다.

더 많은 고무 생산량, 더 많은 돈을 위해서였다.

 

임금의 어명이 지엄해서,

포스 퓌블리크는 콩고 땅에서 더욱 미쳐 날뛰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을 경우  콩고 주민들의 손목을 잘라버렸다.

 

 

레오폴트 2세가 콩고 원주민의 손목을 휘감고 위협하는 풍자화. 1906년 작품. 이 카툰의 한 컷은 레오폴트 2세의 잔혹한 콩고 원주민 착취에 대하여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상징적 비유적 그림으로 유명한 것임.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공포를 줌으로써, 고무 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다고 믿은 것이었다.

손목은 레오폴트 2세를 향한 충성의 상징이었다.

레오폴트 2세의 재산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손목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고무는 그렇게 피를 먹고 자랐다.

콩고의 수많은 사내는, 여인들은, 노인들은, 아이들은, 한쪽 손만 달고 살아가야 했다.

콩고는 ‘외손(짝손)’의 나라였다.

 

레오폴트 2세는 번듯한 사나이였다.

약소국의 이름뿐인 왕이라는 허울은 벗어 던졌다.

그의 재산이 유럽의 내로라한 왕실에 버금가는 것이어서였다.

그 누구도 레오폴트 2세를 무시할 수 없었다.

대관절, 고무의 왕을 어떻게 깔본단 말인가.

 

 

 

 

“일은 열심히 해야지... 안 하면 혼나야 하고...” 악마 레오폴트 2세.

 
 
 
 

물쓰듯 돈을 쓰다

벼락처럼 부자가 된 이들은 과거를 세탁하기 위해서라도 과시욕에 젖어 들기 마련인데,

레오폴트 2세도 그에 다름없는 사람중 하나였다.

 

벨기에 전역에 화려한 건물을 지어댔다.

라에켄의 거대한 왕실 온실,

브뤼셀의 셍캉트네르 개선문,

안트베르펜 중앙역의 화려한 돔,

그리고 테르뷔런의 왕립 중앙아프리카 박물관.

레오폴트의 또 다른 이름은 ‘더 빌더 킹’(The Builder King), 건축왕이었다.

 

 

돈을 물 쓰듯 쓰는 그에게, 숱한 여자들이 달라붙었다.

그는 쾌락에 점잔빼는 인물이 아니었으므로,

자신이 지은 웅장한 저택에서 쾌락에 짙게 물들어 갔다.

 

 

 

레오폴트 2세가 건설한 브뤼셀의 퀀테네르 파크. [사진출처=마크 리카에르트]

 

 

 

특히 그가 가장 애착을 보인 인물은 캐롤라인 라크루아였다.

16살, 프랑스 파리 출신의 여인이었다.

십 대의 재기발랄함으로, 그녀는 손쉽게 레오폴트를 맛있게 요리했다.

 

남자를 다루는 방법에 능란했던 그녀는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창녀였다.

파리의 내로라 하는 거물들을 제것으로 만든 실력으로 고무의 왕까지 손아귀에 거머쥐었다.

 

십 대의 교태에 홀려서, 레오폴트 2세는 그녀에게 모든 걸 주려 했다.

수많은 드레스, 보석, 현금과 저택이 그녀의 소유였다.

라크루아의 보석함에는 콩고 채권도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콩고 원주민 착취의 피가 프랑스 창녀의 배를 채웠던 셈이다.

 

 

 

캐롤라인레오폴트 초상으로 만들어진 엽서.

 

 

 

 

콩고를 포기하나 했더니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어서,

손목이 하나만 있는 사람으로 가득한 콩고의 이야기가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다.

유럽인들은 뒤로는 온갖 구린 짓을 일삼으면서도,

앞에서는 도덕과 체면을 내세우는 위인들이었으므로,

유유상종으로 별반 다름없는 자들이 사촌이 배아픈 격으로 모두가 레오폴트 2세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프랑스 어린 창녀와 뒹굴면서, 콩고 어린이의 손목을 잘라대는 비열한 인간이라고.

 

 

 

“노세, 노세 늙어 노세...” 레오폴트 2세라크루아 관계를 조롱한 풍자화.

 

 

 

1908년 벨기에는 사면초가였다.

주변유럽의 시민사회, 종교 단체들의 비난이 거세게 일어서였다.

분노한 그들의 손에는 ‘손이 잘려 망연자실한 콩고인’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

레오폴트 2세는 그의 사유지를 벨기에 정부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노욕은 끝이 없어서, 그는 벨기에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상금을 챙겼다.

그는 막대한 자금을 안고 라크루아와 결혼식까지 올렸다.

창녀에서 왕의 부인으로.

 

 

라크루아는 화류계의 전설이었다.

이듬해 레오폴트 2세가 죽어버려서, 라크루아는 프랑스의 포주와 재혼했다.

그녀의 서사는 더없이 완벽해졌다.

*공사를 칠 거면 라크루아처럼 치는 것”이라고, 프랑스의 창녀들은 수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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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_恐詐 : 공갈_恐喝사기_詐欺라는 말의 축약된 형태의 말.

                     공갈_ 恐喝 : 거짓말을 속되게 표현한것.

                     사기_ 詐欺 : 못된 꾀로 남을 속이는 것

이 본문 포스팅에서는 라크루아가 위의 풀이말의 의미처럼 레오폴트를 요리했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임.

                                                                                                                                                       Sin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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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재혼은 안돼...*돌싱글즈는 안돼...” 레오폴트 2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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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글즈 : '돌싱' + '싱글즈_Singles'를 합친 말로써 유행성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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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 '아온 글'의 줄임말로, 이혼한 뒤 다시 독신이 된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

싱글즈_Singles : 영어로 '독신인 사람들'이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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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돌싱글즈'이혼을 경험한 싱글 남녀를 가리키는 표현이며,

특히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돌싱글즈의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음. 

이 프로그램에서는 이혼 경험이 있는 출연자들이 새로운 인연을 찾는 과정을 담고 있음.

 

[참고]

'돌싱'은 일상에서 비교적 널리 쓰이는 표현이지만,

공식적인 문서나 격식을 갖춘 상황에서는 '이혼 후 독신인 사람', '이혼한 사람'으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옳은 표현이며 더 중립적이고 적절한 경우라고 봄.                                                     Sin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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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의 비극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비극을 낳게 한 원흉은 죽어버렸지만, 콩고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고무나무 씨앗이 동남아시아까지 밀수돼 대량 생산되기 시작해서였다.

과잉 공급은 가격 폭락을 불러서, 콩고는 더없는 고통을 마주했다.

1960년 벨기에로부터 독립(민주콩고)했어도 콩고는 잠재적 고통이 끝나지 않아 웃지 못했다.

 

 

 

"할아버지, 내 손 어디있어요” 브뤼셀 대성당 주춧돌을 놓는 레오폴트 2세손과 발이 잘린 콩고 아이들이 그려져 있다.

 

 

 

 

 

콩고의 비극은 고무나무 뿌리처럼 수세기가 지나도 억세고 질기게 달라붙었다.

그러니까 어떠한 경우라도 나라가 약해 식민지가 되서는 안되는 이유가 반증된 것이다.

언어, 문화, 민족 구성원이 전혀 다른 부족끼리 ‘한 국가’로 뭉쳐버린 탓이었다.

카탕카 주가 분리 독립을 선언하면서 콩고는 내전에 빠졌다.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지역에서도 분리를 주장했다.

그 뒤로 군부 독재가 이어졌다.

손목에서 흐르던 피가, 또 다른 피를 불러서, 콩고는 여전히 흥건한 피의 늪에 잠겨 있다.

 

 

 

고무나무에서 눈물짓던 고사리손의 아이들이

그 후 100년 지난 오늘날에는 스마트폰 배터리의 원료코발트를 캐고 있어서다.

벨기에를 아름다운 궁전으로 밝힌 손이 스마트폰을 밝히는 손이 되어가는 셈.

 

그랬든 어쨌든

점점 어두워지는 건 오직 콩고 아이들의 시름의 낯빛불쌍한 고사리손들일 뿐이다.

 

 

 

콩고 자유국 관리 스톰스 장군 기념비에 붉은 페인트가 칠해 져있다. 콩고 국민의 를 상징한다. [사진출처=EmDee]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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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벨기에 레오폴트 2세는 어엿한 제국이 되기 위해 아프리카 콩고를 무단 식민지화.

고무 타이어가 발명되면서, 콩고는 고무 생산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레오폴트 2세의 폭주.

고무 생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목을 잘랐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10대 창녀와 부귀영화.

벨기에가 임의로 만들어놓은 국경선 때문에 독립 후에도 극심한 피의 내전에 빠져 심한 혼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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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영장, 그 인간의 지독한 특권?

 

부제 : 인간! 공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그릇된 욕망의 끝없는 질주

원제 : “인간이 제일 끔찍” 죽을 때까지 ‘배설’ 기계로 착취…이 커피, 꼭 먹어야 해?

            김광우 2026. 2. 27. 18:41

 
 
 
 
 
인도네시아 루왁커피 농장에서 발견된 사향고양이.[PETA 홈페이지 갈무리]

 

 

 

 

 

 

“정말 ! 이렇게까지 해서, 커피를 먹어야 해?”

 

인도네시아 한 농장,

곳곳에 배설물이 널브러진 열악한 환경에서 작은 동물 한 마리가 발견됐다.

동물의 정체는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사향고양이’.

이들이 철창에 갇힌 이유‘루왁커피’ 생산 때문이다.

 

루왁커피

커피 열매를 먹은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채취한 원두로 만든 커피를 말한다.

맛과 향이 독특하고,

생산량이 적어 최고급 커피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는 인간의 기호식품이다.

 

 

 

 

인도네시아 루왁커피 농장에서 발견된 사향고양이.[PETA 홈페이지 갈무리]

 

 

 

문제는 루왁커피 생산에 투입된 사향고양이들의 현실.

업자들은 매일 적정량을 넘어서는 커피 열매를 강제로 먹이고, 배설물을 채취한다.

이렇게 학대당한 사향고양이들은

피부병, 탈모, 영양실조 등 각종 질병을 앓고 이상 행동을 보인다.

평균 수명의 절반을 채우는 경우도 드물다.

 

 

인도네시아 루왁커피 농장에서 발견된 사향고양이.[PETA 홈페이지 갈무리]

 

 

 

그러나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규제는 마땅치 않다.

멸종 위기종도 아닌 데다,

사향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별도의 세부 사육·복지 기준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루왁커피를 포함해 동물 배설물로 만든 커피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향고양이 배설물에서 채취한 원두.[colipsecoffee 홈페이지 갈무리]

 

 

 

 

루왁커피 주산지인 인도네시아 농림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4년 기준 루왁커피 생산량

전체 인도네시아 커피 수출액(16억4000만달러)의 0.5% 수준에 불과하다.

한화로 하면 약 143억원 수준으로, 명성에 비해 수출액이 많지 않다.

 

이유는 원두를 채취하는 방식에서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루왁커피는 커피 열매가 사향고양이의 소화기관을 거치는 동안 가공된다.

하루 먹을 수 있는 양이 정해진 데다, 30시간이 넘게 소요된다.

심지어 배설물에서 일일이 콩을 수집해 가공하는 수고를 거쳐야 한다.

 

 

 

인도네시아 루왁커피 농장에서 발견된 사향고양이.[PETA 홈페이지 갈무리]

 

 

 

가격은 품질 정도에 따라

kg당 200달러 수준에서 최고가로는 1000달러 이상을 호가하는 경우도 있다.

국제 아라비카 원두 도매가가 kg당 5달러 내외인 것을 고려하면, 수십배까지 차이가 벌어지는 것.

소매점에서는 커피 한 잔에 10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판매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도 루왁커피가 소비되는 이유는 독특한 풍미다.

이론적으로는 사향고양이의 소화 과정에서 단백질 분해가 일어나며,

맛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아무나 마실 수 없는 ‘귀한 커피’라는 고급 마케팅 또한 루왁커피 소비가 되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인도네시아 루왁커피 농장에서 발견된 사향고양이.[PETA 홈페이지 갈무리]

 

 

 

전통적인 루왁커피의 경우, 동물보호 문제와 상충하지 않는다.

커피열매를 먹은 야생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을 찾아 채취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향고양이는 커피열매뿐만 아니라 곤충 등 다양한 먹이를 섭취하는 ‘잡식성’ 동물이다.

꾸준히 생산량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루왁커피 농장에서는

사향고양이를 가둬 두고, 커피열매를 먹여 배설물을 채취하는 방법을 이용한다.

이 과정에서 학대가 발생한다.

가장 주요한 것은, 적정 섭취량을 넘는 커피열매를 강제로 먹이는 것이다.

더 많은 배설물을 얻기 위해서다.

이 밖에도 지나치게 비위생적이고 좁은 사육 환경 등이 지적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루왁커피 농장에서 발견된 죽은 사향고양이.[PETA 홈페이지 갈무리]

 

 

 

동물보호단체 *PETA아시아는

지난 2020년과 2024년 인도네시아 루왁커피 생산 농장을 방문해,

실제 학대 현실을 고발했다.

 

조사관들에 따르면,

해당 농장의 사향고양이들은 자기 배설물로 뒤덮인 좁은 철망 안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아울러 영양실조, 기생충 감염, 시력 상실 등 건강상 문제를 앓았다.

 

흔히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에게 나타나는 정신적 증상, *정형행동도 관찰됐다.

같은 자리를 빙빙 돌거나 벽에 머리를 박는 등 행위다.

사향고양이는 원래 숲속 나무를 오가며 각종 먹이를 섭취하는 동물이다.

본능과 다르게 행동반경이 제한되면서 정신적 증상이 나타났다는 게 PETA 측의 설명이다.

 

 

 

인도네시아 루왁커피 농장에서 발견된 사향고양이.[PETA 홈페이지 갈무리]

 

 

========================================================================================

*PETA_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

  동물의 권리(animal rights)를 옹호하는 세계적인 비영리 단체.

  1980년에 설립되었으며, 본부는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에 있음.

   PETA의 슬로건

  "Animals are not ours to eat, wear, experiment on, use for entertainment, or abuse in any other way."

  (동물은 먹거나, 입거나, 실험하거나, 오락에 이용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도 학대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

  PETA는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동물권 단체 중 하나로,

  동물실험 반대, 비건 식생활, 모피 반대, 동물 오락 이용 반대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음.

  한편, 강경한 캠페인 방식과 안락사 정책 등을 둘러싼 논란으로도 자주 주목받는 단체임.

*정형행동_Stereotypic Behavior 

  특별한 목적이나 기능 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을 말함.

  주로 스트레스, 지루함, 좌절, 환경의 제약 등이 오래 지속될 때    나타나는 이상행동으로 알려져 있음.

--------------------------------------------------------------------   

    - 같은 길을 계속 왔다 갔다 하기

    - 몸을 앞뒤로 흔들기

    - 머리를 반복해서 흔들기

    - 철창이나 우리를 계속 물어뜯기

    - 자신의 털이나 깃털을 반복해서 뽑기

--------------------------------------------------------------------

  이러한 행동은 동물원, 축사, 실험실처럼 공간이 제한되거나 자극이 부족한 환경에서 사는 동물에게 자주 관찰됨.

  다만 정형행동이 있다고 해서 항상 현재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뜻은 아니며,

  과거의 스트레스 경험으로 습관처럼 지속되는 경우도 있음.                                                                        SinEun

=========================================================================================

 

 

PETA는 보고서를 통해

“사향고양이들은 배설물, 썩은 커피열매,

기타 오물로 뒤덮인 우리에 갇혀 있는 데다,

견딜 수 없는 더위 속에서 끊임없이 헐떡였다”

“수의학적 치료를 받지 못해

피가 흐르는 상처를 입은 사향고양이들도 여러 마리 발견했다”고 언급했다.

 

이런 루왁커피 산업의 잔혹성은 지속해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루왁커피 유통과 소비는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서

‘루왁커피’를 검색하면, 루왁커피 원두나 이를 사용한 제품들이 다수 보인다.

상품평 페이지에서는 오로지 루왁커피의 ‘맛’만을 언급한 후기들이 눈에 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고 있는 루왁커피.[홈페이지 갈무리]

 

 

 

 

아울러 루왁커피 중에서는 100% *야생산’이라고 광고하는 상품이 적지 않다.

야생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채취했기 때문에, 동물 학대 문제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루왁커피의 100% 야생 채취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 상품이 사육장에서 나온 원두를 섞어 허위 표시를 붙이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PETA

“소비자와 소매업체들은 사육된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을

*야생산“으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생산자들에 의해 기만당하고 있다”

“어느 나라에 있든, 어떤 보증을 받았든, 윤리적으로 생산된 루왁커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야생산_野生産 : 자연 상태에서 자란 것에서 얻은 생산물 또는 야생에서 채취·수확한 것을 뜻함.

                           ------------------------------------------------------------------------------------------------

                            야생산 버섯 : 인공 재배가 아니라 산이나 숲에서 자연적으로 자란 버섯

                            야생산 약초 : 야생에서 자란 약초를 채취한 것

                            야생산 꿀 : 야생 벌이 만든 꿀을 채취한 것

                            ------------------------------------------------------------------------------------------------

                           즉, 재배하거나 사육한 것이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 얻은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

                           다만 "야생산"은 일상에서 매우 자주 쓰이는 단어는 아니며, 

                           문맥에 따라 "야생에서 생산된", "야생 채취", "자연산"과 동일한 의미로 쓰임.            SinE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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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처참한 비극적 최후

부제 : 악령을 품고 인간세상에 출현한 권력의 괴물

원제 : 감옥에서 처참하게 죽은 비델라, 사면 받고 편안하게 죽은 전두환

            김성수 시민기자2026. 2. 21. 12:03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Jorge Rafael Videla, 1925~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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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델라, 이사벨 페론을 강제로 몰아내고 아르헨 대통령 취임
'더러운 전쟁' 주도 무고한 민간인들 살상
500여 명 아기 강제입양 인륜마저 저버려
종신형 받고 사면됐다가 재구속 옥중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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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을 그대로 따라 하려 했던 윤석열
내란죄로 1심 무기징역 선고돼 이제 단죄 첫 발을 떼다

*****************************************************************************

 
 

 

 

 

 

 

역사의 비극반복되는 속성이 있다.

특히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은 국경을 초월해 닮은꼴을 띤다.

 

 

우리에겐 축구 강국으로 잘 알려진 나라, 

축구의 신이라고 불리우는 축구 슈퍼스타 '메시'의 국적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나라의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어두운 그림자로 점철된 작자가 

바로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Jorge Rafael Videla, 1925~2013)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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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걸어온 길과 비참한 최후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 등골 서늘한 경고장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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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의 타락, "나라를 구한다"는 망상

비델라는 1925년 아르헨티나의 군인 명문가 출신이다.

독립전쟁 영웅인 고조부와 주지사였던 할아버지,

육군 대령인 아버지의 뒤를 이은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상위권으로 졸업한 '전도유망한 엘리트'였다.

 

1975년 육군 총사령관에 오른 그는

이사벨 페론 정부의 혼란을 틈타 1976년 3월 24일 새벽, 탱크를 몰고 권력을 찬탈했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화려했다.

"국가 재건", "질서 회복", "민주주의 복귀".

하지만 이 번지르르한 수사 뒤에는 자국민을 살육하는 '더러운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1976년 비댈라.(위키피디아)

 

 

 

 

 

 

 

'더러운 전쟁', 국가가 저지른 최악의 인륜 파괴

비델라 정권 5년을 포함한 7년의 군부독재 기간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시기였다.

 

군부는 '국가 재편성 과정'이라는 이름 아래 반정부세력 척결을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 타격 대상은 학생, 노동자, 기자, 수녀 등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최소 9,000명에서 최대 3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실종'되었다.

이들은 비밀 수용소에서 고문을 당한 뒤 대서양 한복판에 산 채로 수장되었다.

 

 

 

가장 경악스러운 대목은 '아기 탈취'였다.

 

수용소에서 출산한 여성 포로들을 살해한 뒤,

그 아기들을 군부 관계자 가정으로 강제입양시켰다.

약 500여 명의 아이가 자신의 뿌리도 모른 채 학살자의 손에서 자라야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비델라는 이 모든 만행이

"신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믿었다.

확신에 찬 독재자가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중장이 1976년 3월 29일 아르헨티나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위키피디아)

 

 

 

 

 

 

독재는 경제를 살린다는 신화의 붕괴

비델라는 인권뿐만 아니라 국가경제도 철저히 파괴했다.

무분별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규제 완화는 외채 급증과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한때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비델라의 '재건' 이후

물가상승률 1000%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그 경제적 상흔은 지금까지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197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한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중장.(위키피디아)

 

 

 

 

 

 

 

끈질긴 단죄, 감옥에서 맞이한 최후

1983년 민주화 이후, 아르헨티나의 과거사 청산 과정은 험난했다.

 

비델라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1990년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시민사회는 포기하지 않았다.

 

2007년 법원사면에 위헌 판결을 내렸고, 비델라는 다시 감옥으로 돌아갔다.

그는 87세였던 2012년, '아기 강제입양' 혐의로 50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5월 17일, 교도소 샤워장에서 미끄러져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끝까지 반성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아르헨티나 법치는 그를 일반 수감자로서 감옥에서 죽게 함으로써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웠다.

 

아르헨티나 독재자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가 197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팔레르모에서 열린 '농촌 엑스포시시온' 개막식에 참석했다.(위키피디아)

 

 

 

 

 

 

 

한국의 거울, 비델라, 전두환, 그리고 윤석열

비델라의 쿠데타

3년 뒤인 1979년 한국의 12.12 군사반란과 전두환의 광주학살로 재현되었다.

하지만 비극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은 또다시 윤석열에 의한 '위로부터의 내란'을 목격했다.

 

비델라"국가재건"을, 전두환"공산화 방지"를 말했듯,

윤석열"반국가세력 척결""헌정질서 수호"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윤석열의 지시에 의해 무장군인들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고 선관위 서버 확보를 꾀한 것은,

비델라 정권이 수용소를 운영하며 국가기관을 마비시킨 방식과 궤를 같이한다.

 

 

 

 

1981년 미국 방문중인 전두환과 이순자.(위키피디아)

 

 

 

 

 

 

 

오늘의 심판, '내란 우두머리'와 무기징역

현재 대한민국 사법부

1997년 전두환·노태우 재판 이후 가장 중대한 역사적 시험대에 서 있다.

 

2026년 1월, 법원은 한덕수 전 총리 등 관련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하며

"12.3 사태는 위로부터의 내란, 즉 친위쿠데타"임을 이진관 판사는 명확하게 정의하고 판결했다.

 

내란 특검윤석열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적용해 사형을 구형했고

지귀연 판사는 지난 19일 내란 수괴 윤석열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아르헨티나는 비델라를 사면 후 재구속하여 감옥에서 죽게 했다.

하지만 전두환은 사면 받고 거액의 추징금을 미납한 채 자택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

광주학살의 발포 책임자실종자 행방 등 핵심 진실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윤석열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독재는 통치행위라는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원칙이 실현되어야

한국의 민주주의는 더욱 튼튼히 설 것이라 확신한다.

 

 

 

 

윤석열과 전두환

 

 

 

 

 

우리가 써 내려가야 할 한 페이지

비델라의 이야기는 공포 영화가 아닌 참혹한 실제 교훈극이다.

아르헨티나는 30년이 걸려 독재자를 감옥에서 죽게 함으로써 그 이야기의 결말을 올바로 썼다.

 

전두환을 자택에서 편안히 보내주었던 한국은,

이제 윤석열'12.3 내란'이라는 새로운 사건을 통해

냉철한 각오로 과거의 그릇된 역사를 바로잡을 기회에 직면하고 있는 중이다.

 

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헌법을 위협할 때,

법과 시민의 힘이 어떻게 그들을 단죄하는지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대한민국에서 비델라가 드리운 그림자를 완전히 지우는 유일한 길이다.

 

 

비델라는 교도소의 차디찬 욕실 바닥에서 죽었고

전두환은 자택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게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

역사의 심판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지만,

비델라가 감옥에서 죽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아르헨티나의 역사는 제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전두환의 유해는 묻힐 곳을 찾지 못해 지금도 연희동 자택에 그대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4년 12월 3일, 한국사회를 뒤흔든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사건은

비델라의 망령이 여전히 우리 곁을 음습하고 괴기스러움으로 배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라가 혼란스러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윤석열의 낡은 변명은

50년 전 아르헨티나의 어두운 역사적 사실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서 죽은 비델라.(Argentine military leader Videla dies at 87 | News | Al Jazeera)

 

 

 

 

 

우리가 비델라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비델라비참한 죽음은 우리에게 몇 가지 명확한 교훈을 남긴다.

독재자는 항상 '구국''질서'라는 식의 언어를 선점한다.

권력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안보'를 외칠 때, 그것은 민주주의 위기의 신호다.

 


아르헨티나가 비델라를 감옥에서 죽게 한 것복수가 아닌 '기록'이자 '예방'이었다.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반드시 변종된 형태로 미래에 다시 나타난다.

전두환이 사면을 받은 역사적 사실에서 쿠데타 망령이 들었던 윤석열이 등장한 것이다.

 

 

비델라

'미친 여자들'이라 비하했던 희생자 어머니들은 아르헨티나 민주주의의 심장이 되었다.

광장을 지키는 시민들의 발걸음만이 독재의 망령된 회귀를 막는 유일한 방파제다.

 

비델라

샤워장 바닥에서 차갑게 죽어갔지만, 그가 남긴 교훈은 여전히 뜨겁다.

아르헨티나가 쓴 '정의의 결말'을 한국은 아직 완성하지 못하고 그 과정중에 있다.

비델라의 그림자를 지우고 다시 찾은 민주주의 역사를 어떻게 새로 써 내려갈 것인가.

그것은 이제 오롯이 우리 대한민국 민주사회의 엄정한 몫으로 남아있다.

 

 

 

 

시민언론 민들레

wadans@empas.com

https://v.daum.net/v/2026022112031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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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륜을 저버린 권력적 탐욕의 비극

원제 : 6년간 6차례 임신후 요절…“깜찍한 공주”라 불리웠던 소녀의 비극

              이원율 2026. 4. 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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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가리타 테레사_Margarita Teresa 1651~1673

 

합스부르크 왕가_王家의 작은 천사
불행했던 출생사례 틈에서 비교적 건강히 태어난 공주
왕가의 대_代 이을 책임 드리워지고, 계속 출산해야 할 운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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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삶과 여러 초상화를 통해 스부르크家의 복잡한 비극을 탐구.

 

디에고 벨라스케스, 흰색과 은색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일부 확대), 1656, 캔버스에 유채, 128.5x100cm, 빈 미술사 박물관
 
 

 
 
 
 
 
 
 
 

나의 기쁨/ 작은 천사, 귀엽고도 매력적인 공주

디에고 벨라스케스, 흰색과 은색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1656, 캔버스에 유채, 128.5x100cm, 빈 미술사 박물관

 

 

 

 

 

 

 

 

아버지는 딸 마르가리타 테레사‘나의 기쁨’으로 불렀다.

어머니는 아이를 ‘작은 천사’, 가까운 친인척은 ‘반짝이는 보석’이라고 칭했다.

 

다섯 살 공주 테레사는 그럴 때면 배시시 웃었다.

얼굴에는 동그란 눈과 앙증맞은 코가 있었다.

바로 아래에는 과일 절임을 바쁘게 오물거리는 입이 보였다.

 

몸은 또래와 견줬을 때 약간 작았지만, 움직임은 늘 크고 활기찼다.

설탕이 묻은 손을 옷 위로 팡팡 털어내는가 하면, 조이는 신발 따위도 언제든 휙휙 던져버리곤 했다.

머리칼을 만져주는 하녀 곁에서 꾸벅 졸다가도,

좋아하는 이만 보이면 쪼르르 달려가 안기는 귀여운 버릇도 있었다.

 

물론 잘 웃는 만큼 잘 울고, 가끔은 심술도 부렸다.

특히나 그 나이대 아이가 그렇듯 지루함을 참지 못했기에, 시종들은 많은 순간 고민에 빠져야 했다.

동시대 사람들은 이러한 소녀를 “깜찍한 아이” 내지 “매력적인 말괄량이” 정도로 기억하곤 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가운데 있는 공주가 마르가리타 테레사), 1656, 캔버스에 유채, 318x276cm, 프라도 미술관

 

 

 

 

 

당시 궁정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테레사를 종종 화폭에 옮겨 담았다.

 

눈부신 금발,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가진 테레사가 가만히 서 있다.

붉은 장식, 검은색 테두리가 특징인 드레스는 언뜻 보기에도 고급스럽다.

다만, 옷 자체가 편하지는 않은 듯 자세는 뻣뻣하다.

당장은 잘 참고 있지만, 곧 성질을 부릴 수도 있는 상황.

시녀가 달콤한 음료로 그녀를 달랜다.

광대와 강아지 또한 그녀의 따분함을 잊게 할 존재로 함께 한다.

벨라스케스의 1656년작, <시녀들>이다.

 

 

이 순간 테레사, 붓을 든 화가, 황급히 무릎을 굽혀 인사하는 또 다른 시녀가 보는 건…

국왕 펠리페 4세와 왕비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Mariana de Austria).

 

그림 배경에 걸린 거울 속 국왕 부부의 표정은 흐릿하지만,

이들은 ‘나의 기쁨’인 딸 앞에서 또 한 번 흐뭇한 기색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

부디 바라건대, 지금 이대로만 자라다오.

이러한 마음도 간절히 품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테레사가 편하게 웃고 울고, 마음껏 아양을 떨고 성질도 부릴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녀에게도 곧 칙칙하게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가까운 미래,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신체적 혹사를 당하고 끝내 요절까지 하고 만다.

 

 

 

 

 

 

 

최고 명문가의 공주, 하지만…근친 사이 복잡한 결합

디에고 벨라스케스, 갈색과 은색의 펠리페 4세, 1631~1632, 캔버스에 유채, 199.5x113cm, 내셔널 갤러리
 
 
디에고 벨라스케스,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 1652~1653, 캔버스에 유채, 234.2x132cm, 프라도 미술관

 

 

 

테레사는 귀하고도 묘한 존재였다.

 

그녀는

유럽 최고 명문 합스부르크가(家)의 자손이자 스페인 공주라는 점에서 고귀했다.

한편으로는 가깝고도 비슷한 피와 피가 섞인,

소위 근친 간의 복잡한 결합에서 탄생했다는 점에서 기묘한 부분이 있었다.

 

 

테레사의 아버지 스페인 펠리페 4세어머니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

그러니까 테레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부이기 앞서 외삼촌과 조카 사이였다.

 

 

펠리페 4세의 여동생 스페인의 마리아 안나(Maria Anna of Spain)가 낳은 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였기 때문이었다.

 

즉, 펠리페 4세는 본인의 친여동생이 낳은 딸과 결혼한 상태였던 것이다.

 

 

원래는 펠리페 4세가 첫 번째 부인(엘리자베트 드 프랑스) 사이에서 낳은 유일한 아들,

발타사르 카를로스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가 혼인하기로 입을 맞췄었다.

 

하지만

그(펠리페 4세)의 첫 부인(엘리자베트 드 프랑스)이 마흔한살로 죽게 되고,

또한 곧이어 아들 카를로스도 고작 열일곱 나이로 사망하고 만다.

 

 

 

펠리페 4세는 갑작스럽게 부인도, 대를 이을 아들도 잃었다.

그런 불운한 상황에서 식을 물리기에는 상황이 복잡했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홀몸이 된 본인이 죽은 아들 대신 나서게 되었다.

그러니까 애초 며느리가 돼야 했을 조카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와 결혼식을 올려버렸다.

그렇게 둘은 외삼촌과 조카에서, 남편과 아내로 기상천외한 짝이 되었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엘리자베트 드 프랑스(펠리페 4세가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와 결혼하기 전 연을 맺었던 첫 번째 아내), 1632, 캔버스에 유채, 207x119cm, 개인소장

 

 

 

 

 

놀라운 건,

당시 합스부르크가에서는 족보를 무시한 결혼이 거리낌없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합스부르크가는 어떤 가문인가.

이들은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오스트리아를 거점으로 중부유럽의 패권을 쥔 세력이었다.

신성로마제국 제위를 사실상 세습하는 특권을 누렸던 공동체이기도 했다.

 

 

‘다른 이들은 전쟁을 하길 바라지만,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

합스부르크가의 초기 생존 전략은 이랬다.

타국 또는 타 세력과의 ‘결혼 동맹’을 통한 세력 팽창이었다.

 

그런데 !, 이 낭만적인 구상이 운이 좋았던 건지 지나치게 잘 통했다.

운과 때가 맞물려 영향력과 권세를 기막히게 넓힐 수 있었다.

 

가령

16세기 합스부르크가의 수장

카를 5세(Karl V·1500~1558)는 국경을 넘나들며 수많은 직함을 달고 다녔다.

스페인 국왕, 이탈리아 군주, 신성로마제국 황제 등등

오죽하면 그는 지금도 중근세 유럽인 중 가장 많은 왕관을 썼던 인물로 불릴 정도다.

 

 

하지만, 한 인간이 통치할 수 있는 땅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는 카를 5세 이후

합스부르크가스페인계오스트리아계로 갈라진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과거 유럽 전역으로 팔을 뻗은 고대 로마제국 또한 결국 동서로 쪼개졌던 일을 떠올리게 하는 사안이다.

 

 

 

 

 

 

 

합스부르크가의 영광과 모순/ 공주의 부모도 자유롭지 못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마르가리타 테레사, 1653~1654, 캔버스에 유채, 128.5x100cm, 빈 미술사 박물관

 

 

 

 

이쯤 부터(물론 이전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합스부르크가에서는 스페인계와 오스트리아계,

또는 분파 안 내 ‘자기들끼리’근친혼이 성행하기 시작한다.

 

한 뿌리에서 갈라진 양측은 차츰 각자의 길을 걸었다.

통치 철학에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혈연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점점 더 서로를 견제하고 의식해야 할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어쩌면 거의 남남, 언젠가 최악 상황에선 아예 남보다도 못할 관계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분파 사이 결혼은 이를 예방하는 수단이었다.

물론, 근친혼의 성행에는 순수한 우리 혈통을 지켜가겠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종교 문제, 혼수와 지참금으로 유출될 수 있는 금은보화를

자신들의 혈연세계라는 울타리 안에서 단속하겠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을 터였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파란색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1659, 캔버스에 유채, 1270x107cm, 빈 미술사 박물관

 

 

 

 

 

오죽하면

공주 테레사의 부모, 펠리페 4세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 또한 근친혼으로 탄생한 인물이었겠는가.

 

 

테레사의 아버지 펠리페 4세?

그의 부모(펠리페 3세와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도 복잡하게 얽힌,

그나마 단순화하자면 육촌지간이라고 볼 수 있었다.

 

테레사의 어머니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는?

그녀의 부모(페르디난트 3세와 스페인의 마리아 아나)에게도 같은 피가 섞여 있었다.

그러니까,

이들의 딸 공주 테레사에게는 한두 줄로는 설명하기에도 힘든,

겹겹이 쌓이고 포개진 혈족의 피가 진하게 흐르고 있는 셈이었다.

 
 
 
 
 

 

유전병 피하지 못한 남동생 그래서 더 귀하고 묘해진 운명

디에고 벨라스케스, 펠리페 프로스페로(3세로 사망), 1659, 캔버스에 유채, 128.5x99.5ccm, 빈 미술사 박물관

 

 

 

테레사는 그런 점에서 볼 때 더욱더 귀하고도 묘한 존재였다.

무엇보다도 이 소녀에게는 근친혼에 따른 유전병을 크게 안고 있지 않은 듯했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 재차 볼 수 있듯 어릴 적엔 그저 천진하고,

시간이 더 흐르니 나름대로 요조숙녀 티도 낼 수 있는, 그런 왕족으로 무난히 자랄 듯했다.

나이가 들수록 합스부르크가 특유의 긴 턱이 나오기는 했다.

다만, 단지 그뿐인 것 같았다.

 

 

 

 

세바스티안 에레라 바르누에보(추정), 카를로스 2세(카를로스 왕자), 1670, 캔버스에 유채, 161.3x109cm

 

 

 

부모 입장에선 이 자체가 엄청난 축복이었다.

이쯤 합스부르크가에서는 사산아의 비율이 상당했다.

겨우 세상 빛을 본다 한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질환을 앓고 있을 때도 많았다.

 

가령 테레사남동생 펠리페 프로스페로는 고작 세 살에 죽었다.

이 또한 누적된 근친혼에 따른 면역체계 약화로 추정되고 있다.

두 번째 남동생 카를로스 왕자(훗날 카를로스 2세)의 몸도 성치 않았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여섯 살이 돼서야 겨우 젖을 뗄 수 있었다.

그만큼 몸이 약하고 성장도 느렸다.

턱뼈가 너무 커 음식을 바로 씹지 못했으며, 다리가 짧아 평생 올바로 걷지도 못했다.

왕실은 그의 장례가 언제든 이뤄질 수 있도록 판을 깔고 있었다.

그것은 여러모로 서글프고, 안쓰러운 일이었다.

 
 
 
 
 
 
 

공주의 결혼 상대 /그 또한 ‘같은 피’ 흘렀다

벤자민 블록, 레오폴트 1세, 1672년경, 캔버스에 유채, 139x110cm, 빈 미술사 박물관

 

 

 

 

공주 테레사의 결혼 상대는 진작부터 정해져 있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 1세.

그는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계의 수장 격 인물이었다.

다만 여기까지 피력한 설명에 의하면 이제는 쉽게 예상할 수 있듯, 둘 또한 혈연이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외삼촌과 조카 사이였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열한 살이었다.

 

 

 

얀 토마스, 연극 의상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1667, 33.3x24.2cm, 빈 미술사 박물관

 

 

 

이들은 1666년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열다섯의 테레사는 즉시 신성로마제국 황후로 관을 썼다.

그리고, 그 이후로 테레사는 더이상 천진난만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는

그때부터 1673년, 생을 다할 때까지 근 7년간 계속해 임신을 경험하게 된다.

그녀는 스페인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온 후부터,

‘임신 중’이거나 ‘출산 직후’가 아닌 적이 거의 없었다.

출산 후 몸을 돌볼 틈도 없이 가문의 또 다른 미래를 잉태하기를 거듭 강요받은 격이다.

이는 혹사라는 말로도 부족한 일이었다.

 

여전히 꽃다운 나이.

예쁜 옷을 좋아하고, 귀여운 것을 곁에 두고 싶은 시기.

그러한 테레사는 왜 갑자기 생을 갉아 먹으면서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을까.

 
 
 
 
 
 
 

무겁고도 묵직했던 책임 /건강이 외려 저주가 되고 있었다

이야생트 리고, 루이 14세, 1701, 캔버스에 유채, 277x194cm, 루브르 박물관

 

 

 

 

 

 

“아들을 낳으세요.

가문의 안위를 위해서,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이 아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당시 합스부르크가의 어른 중 누군가는 테레사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지.

그것이 타세력로부터 집안을, 나아가 조국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는 당부 하에 말이다.

 

테레사가 감당해야 하는 미래는 무겁고, 묵직했다.

가장 큰 위협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프랑스였다.

 

루이 14세의 아내는 스페인의 마리아 테레사(María Teresa de España).

그녀는 펠리페 4세그의 첫 번째 부인 사이에서 나온 딸이었다.

테레사에게는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가 다른, 열세살 연상의 배다른 언니 격이었다.

 

 

 

당시 스페인의 마리아 테레사루이 14세의 반려이자 프랑스의 왕비였지만,

한편으로는 그 나라의 정치적 도구 취급을 받고 있었다.

루이 14세에게는 야망이 있었다.

언젠가 자기 부인, 스페인의 마리아 테레사를 앞세워 스페인 자체를 집어삼키고 싶다는 게 그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루이 14세는 스페인의 펠리페 4세가 죽기를 내심 바라기도 했다.

그의 직계 아들인 허약한 카를로스 2세(여섯 살까지 젖을 떼지 못했던)도 후사 없이 요절하기를 기대했다.

 

그렇게만 되면

다음 스페인 왕위 계승의 1순위가 본인 옆자리에 있는 왕비,

스페인의 마리아 테레사라고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샤를 보브룬 등, 스페인의 마리아 테레사(루이 14세의 아내), 1665년경, 캔버스에 유채, 139.5x105.7cm, 베르사유 궁전

 

 

 

 

 

물론 펠리페 4세루이 14세속마음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나름의 수도 썼다.

자기 딸 스페인의 마리아 테레사루이 14세에게 보내기 전,

일종의 ‘왕위 계승권 포기’ 각서를 쓰게 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가 있었다.

이 문서를 남기게 한 대신 함께 부치기로 한 막대한 지참금.

그 지참금을 돈이 부족해 펠리페 4세는 제대로 지불하지 못했다.

 

루이 14세는 사안을 넘어가지 않았다.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만큼, 당시의 포기 서약서 자체도 무효라는 입장이었다.

프랑스는 이를 스페인 침략의 명분으로도 삼을 기세였다.

 

 

스페인은 난감해졌고 받아칠 대안이 필요했다.

이런 가운데 1665년 펠리페 4세가 죽고,

언제 죽을지 모를 카를로스 2세가 일단은 스페인 왕위를 계승했다.

 

가장 깔끔한 시나리오는 카를로스 2세가 아들을 낳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카를로스 2세는 고작 네 살.

이러니 마지막 희망은 공주 테레사뿐이었다.

테레사가 빨리 합스부르크가의 아들을 낳아야 했다.

 

그렇게만 되면 “이 아이야말로 합스부르크가의 진정한 순수 혈통”이라는 명분으로

스페인 왕위 계승 서열의 맨 위로 끌어올릴 마음이었다.

루이 14세에게 맞설 논리는 이것말곤 없어보였다.

 

테레사가 어린 나이에 외삼촌(레오폴트 1세)과 결혼해 끊임없이 임신을 해야만 했던 일.

 

그 이면에는 그토록 잔혹하고도 복잡한 탐욕에 기인한 정치적 배경이 깔려 있었다.

테레사는 이제 국가를 위한 ‘큰 기쁨’이자, 조국을 수호하는 ‘커다란 천사’가 돼야 했다.

건강하게 태어난 어린 시절은, 언젠가부터 축복이 아닌 저주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인간의 일그러진 탐욕속에서 파멸해 가는 참혹한 아이러니였다.

 
 
 
 
 
 
 

6년간 일곱 번의 임신 /닳아 없어질 만큼의 혹사

후안 바티스타 마르티네스 델 마조, 상복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1665~1666, 캔버스에 유채, 205x144cm, 프라도 미술관

 

 

 

 

테레사는 목이 쉴 만큼 울었다.

1667년 9월에 출생한 테레사레오폴트 1세의 첫아들 페르디난트 벤첼.

아이는 그다음 해 1월에 열병 속에서 눈을 감았다.

고작 3개월여만이었다.

 

테레사는 곧이어 두 번째 임신을 했다.

허전해진 요람을 어루만질 틈 따위는 없었다.

1669년 1월에 태어난 아이는 딸이었다.

이름은 ‘사랑받는 귀중한 존재’, 마리아 안토니아로 지었다.

썩 튼튼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살아남았다.

다만 여자아이였던 만큼 아직 숨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녀는 곧장 세 번째 임신에 들어가야 했다.

1670년 2월, 밖으로 나온 셋째는 또 한 번 아들이었다.

하지만 요한 레오폴트라고 부른 이 아이는, 첫째처럼 일찍 하늘에 올랐다.

세상 빛을 본 그날 숨이 넘어가 죽고 만 것이다.

어린 어미였던 테레사는 또한 함께 숨이 넘어갈 만큼 땅을 친 날이었다.

 

이어 1672년 2월, 을 재차 낳았지만 생후 20일 만에 사망.

아울러 두 번의 유산과 1673년 3월, 임신 4개월차에서사산….

 

 

얀 토마스(추정), 마르가리타 테레사와 딸 마리아 안토니아, 1670년경, 캔버스에 유채, 125x162cm, 빈 미술사 박물관

 

 

 

 

이 모든 건, 테레사열여섯 살부터 스물두 살까지 겪어야 했던 일이었다.

 

이렇게만 보면 테레사는 6년간 6~7번의 임신을 한 것이 된다.

이 가운데 실제로 아이를 낳은 경험도 네 차례나 있었던 것으로 계산할 수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두 차례 유산의 경우 아직 추정 영역에 머물러 있다는 의견도 나오긴 한다.

그사이 반짝이던 테레사도 빛을 잃었다.

눈에는 총기가 없었다.

한때 자랑이었던 금발 곳곳에는 벌써 흰머리가 내려앉고 있었다.

출산과 유산을 거듭할수록

혀가 입에 다 담기지 못할 만큼 부풀었고, 치아는 대책 없이 후드득 떨어지고 있었다.

 

언젠가 돌아보니, 테레사도 합스부르크가의 다른 이들만큼 턱이 길게 빠져 나와있었다.

테레사는 결국 아들을 낳지 못한 채 세상과 등졌다.

마지막 사산을 겪은 후 따라온 합병증에 몸이 짓눌리고 말았다.

그때가 1673년, 3월12일이었다.

 

합스부르크가를 위한 그녀의 헌신은 이처럼 허망한 것이었다.

돌아보니 이 가문에서는 건강하게 태어난 것 또한 기쁨이 아닌 슬픔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그렇기에 더 많이 짊어지고, 더 자주 희생해야 하는 저주의 삶이었다.

 

루카 조르다노, 말을 탄 카를로스 2세, 17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81x61cm, 프라도 미술관

 

 

 

 

그나마

펠리페 4세에 이어 왕위를 물려받은 카를로스 2세가 1700년, 마흔 살 나이까지 비교적 길게 생존했다.

곧 죽을 듯 갖은 병을 다 달고 다녔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남는 한편 비교적 온전하게 국가를 통치하는 면도 보였다.

 

하지만 그뿐.

병약한 카를로스 2세는 자식을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끝내 돌고 돌아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가 펠리페 5세라는 이름으로 스페인 왕관을 물려받는다.

이는 합스부르크가가 그렇게나 경계했던 새로운 왕조의 시작을 뜻했다.

결국은..., 신의 저주를 받아 결국은 이렇게 될 것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돌아보면 이 가문의 불행은 이미 오래전부터 하늘의 섭리를 배반한 이유로 예고돼 있었다.

서글프게도, 극도로 탐욕적인 그들만 몰랐거나 모르려고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참고 자료

마틴 래디,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까치

레이몬드 카 등, 스페인사, 까치

Ingrao, Charles W., The Habsburg Monarchy, 1618–1815, Cambridge University Press

Kann, Robert A., A History of the Habsburg Empire, 1526–1918,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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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적절한 리터칭 작업을 했습니다.

문장은 가독성과 문맥의 의미를 용이하게 하려고 분절 줄바꿈 처리 했음을 또한 밝힙니다. SinEun

 

 

 

 

 

 

 

 

 

             

 

 

 

 

 

 

봉숭화 /SinEun

누덕누덕 헤진 담장 아래
내가 당신이 된 채
의식은 저물녘 붉게 태우고 있다
오래전 훅훅한 바람결에 길 하나를
꽃잎 속에 속삭여 접어 두었고
그 길 여정의 끝이 어디인지, 무엇인지
생애 내내 난 아직도 모른다
여름은 해마다 그 길을 찾으려
불그스레한 세월 피워 올리지만
끝내 입술에 닿을 수 없는
꽃의 빛깔뿐이었을까
스치듯 꽃빛의 꿈속 풋사랑이었을까
먼저 쓰러져 사라진 것은 
계절이 아니라 지친 삶의 한숨일거였다
손끝에 물들였던 저녁의 붉은 추억은
아직 지워지지도 않았는데
사모_思慕에 지친 삶은 쓰러져 갔을 것
담장밑으로 짙게 푸르고 붉었던 것
어둠이 깊어질수록 더 선명해지던 존재였던 것
누구의 이름인지를
끝내 부르지 못한 그대 당신
사라질 수 없는 붉은 연정_戀情과 함께
지워지지 않는 기다림, 재회_再會

눈감고 
사라진 세월 여미울 때 마다
또다시 아득하게 멀어지는 아련함들

 

 

 

 

 

 

 

 

 

 

                봉숭아는 여전히 내 유년시절의 따스하면서도 시린 가슴이다.
                처연한 가슴이 오래도록 시심에 얹혀져 체기로 남아 있었던 것이었을까.
                해서 눈에 보여진 봉숭아는 흘깃 지나쳐 갈 수 없는 삶의 사랑같은 것이었다.
                봉숭아 회억_回憶속엔 항상 다르지 않게 똑 같은 상념의 그림이 그려진다.

                언제나 살풋하고 고즈녁한 내고향 판곡
                내 영혼의 바다였던 무한여정의 어머니
                맑고 소탈하게 정갈했던 장독대
                다 헤진 밀짚 울타리 사이로 비쳐드는 눈부신 아침햇살, 
                밤새 훅훅한 여름밤 이슬 온몸에 받아 곱게 화사하고 정갈했던 마침내 ! 봉숭아 !
                뒤뜰 정지문 빼곡이 열고 바라보았던 너 봉숭아 색시
                왜 그리 섹시함도 없이 붉은 정열 가슴안고 수줍어 했는지
                오랜 세월 삶의 여정속에 그 이유를 알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내밀한 당신의 소중함은 그대로 간직해야 할 것 같은 마음도 든다.

                   바로 이 모든 것들이, 
                   두번 다시 삶 내내 사랑할 수 없는 아름다운 본질의 추억으로 남아있어,
                   그저 고마운 일이다.
 

                항상 떠올리면 그렇듯이
                봉숭아는 내게 있어 그저 청순하고 단순한 꽃이 아니라 
                유년시절, 내고향, 기다림, 약속,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세월의 빛깔까지 함께 품고 있기에 
                지그시 눈감고 자꾸만 어루어 보면 볼 수록 아름답고 결이 곱게 드러나는 존재, 
                바로 그런 꽃이며 내 마음이다.

 

 

 

 

 

                         내게 봉숭아는 단순한 꽃이 아니다. 
                         어쩌면 나는 오래전 부터 봉숭아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봉숭아를 통해 내 지나온 시간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내 기억 속 봉숭아는 언제나 저물녘의 붉은 빛깔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붉음은 뜨거운 정열의 색은 절대 아닐것이리라.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살아온 연정_戀情의 빛깔이며, 
                         진정 말없이 견뎌 온 머언 그리움의 처연한 색채이다. 
                         담장 아래 수줍게 피어 있던 꽃 한 송이는 긴 세월을 품으며 
                         어느새 고향집의 정갈한 장독대가 되고, 
                         군데군데 삭아 헤진 밀짚 울타리의 넉두리가 되고, 
                         마지막 기억 언저리엔 가슴 깊숙이 묻혀 사라지지 않은 애틋한 '그리움'이 되었다.

 

 

 

 

 

                봉숭아를 떠올릴 때마다 
                꽃을 생각하기보다 먼저 어린 시절의 풍경을 만난다. 
                살풋한 바람이 지나던 고향의 뒤뜰과 
                새벽 이슬을 머금고 있던 꽃잎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맑고 순한 마음이 함께 되살아난다.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영혼이 머물러 있는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내 마음속 봉숭아에는 늘 '기다림'이 있었다. 
                다가갈 수 없었던 존재에 대한 여운,
                끝내 전하지 못했던 시린 마음속 짝사랑같은 로망,
                부르지 못한 이름 하나가 봉숭아 꽃빛처럼 오래도록 남아 있다. 
                해서 봉숭아는 이루어진 사랑의 상징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사랑의 기억으로 
                내 안에 여지껏 끈질기게 살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마다 피고 지는 꽃이건만 
                기억 속에서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연모_戀慕의 꽃이다.

 

 

 

 

                세월이 흐르며 많은 것들이 바래고 사라졌지만, 
                봉숭아는 패랭이 꽃처럼 이유를 불문하고 더욱 더 선명해진다. 
                어쩌면 그것은 꽃 자체가 아니라 
                그 꽃에 사무친 오래된 기억들의 잔상에 어린 흔적때문일 것이다. 
                유년의 순수함과 고향의 온기, 풋사랑의 설렘과 아련한 상실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까지 
                모두 봉숭아라는 아련한 상징성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지금도 봉숭아를 보면 가슴 한쪽이 시리면서도 따뜻해진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다시는 되가질 수 없는 기억 때문일 것이다. 
               봉숭아는 내 삶이 잃어버려 거의 사라진 것들에 대한 기억이며
               끝내 놓지 못한 추억이란 사랑이며 
               세월이 가도 죽을 때 까지 사라지지 않는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다.

                     어쩌면 
                     지금도 그 꽃을 바라보며 어린 날의 나를 만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만남이 지금 이 순간처럼 가능한 한
                     봉숭아는 언제까지나 지지 않는 꽃으로 남아 있을 것이리라.

 

 

 

 

 

  

 

                                            봉숭아 /김형준詩 홍난파曲

 

                                       울 밑 에 선   봉 선 화 야   네  모 양 이  처 량 하 다
                                       길 고  긴 날   여 름 철 에  아 름 답 게   꽃 필 적 에
                                       어 여 쁘 신   아 가 씨 들   너 를  반 겨   놀 았 도 다

                                       어 언 간 에   여 름 가 고   가 을 바 람   솔 솔 불 어
                                       아 름 다 운   꽃 송 이 를   모 질 게 도   침 노 하 니
                                       낙 화 로 다    늙 어 졌 다   네 모 양 이   처 량 하 다

                                       북 풍 한 설   찬 바 람 에   네  형 체 가   없 어 져 도
                                       평 화 로 운   꿈 을   꾸 는  너 의  혼 은  예 있 으 니
                                       화 창 스 런   봄  바 람 에   환 생 키 를   바 라 노 라 

 

 

                      위 가곡 봉숭아는 '봉선화'라고도 하며 1920년에 김형준 시인이 발표했던 詩다.
                      나라를 잃은 슬픔을 노래한 시작곡가(홍난파)의 바이올린독주곡 '애수'의 선율에 맞춘 곡이다.
                      1940년대 초에 반일사상의 노래라 하여 일제에 의하여 가창 금지가 되었으나,

                      지금은 널리 애창되고 있는 아름다운 한국 가곡중의 대표적인 한곡이다.

                      봉숭아의 또 다른 이름으로는 금봉화_金鳳花, 봉선화_鳳仙花, 지갑화_指甲花, 농동우 등이 있다.

 

                    바리톤 고성현 노래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g8ZvDsE7mWs

 

                    소프라노 김유섬노래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p9sSq6lc7Qw?list=RDp9sSq6lc7Qw

 

                    소프라노 임청화 노래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8oOcCAxOB7M?list=RD8oOcCAxOB7M

 

 

 

 

 

 

 

 

 

 

봉숭아 /박은옥

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이 밤이 다하면 질 터인데
그리운 내 님은 어딜 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밤만 지나면 질 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주던 곱디고운 내님은 어딜 갔나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걷혀 나타나듯
고운 내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났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걷혀 나타나듯
고운 내 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났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

                    동영상 링크 주소 : https://youtu.be/qGCF6p0o8YA?list=RDqGCF6p0o8YA

 

 

 

 

 

                          봉숭아 !  네 빛깔 모두의 혼속에 녹아

                                더없이 붉어 이루지 못한 사랑 더욱 애절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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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_稀代의 사법농간자 대법관 조 희대

 

원제 : 법리에 눈감고 양심도 실종된 ‘조희대의 판사들’

            송요훈 편집위원 2026. 2. 15. 11:23

 

 

 

 

포스팅 기사글을 읽기전에 먼저 이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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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핵심은 삼권분립_三權分立이다. 
삼권분립은 정족지권_鼎足之權, 삼권정입_三權鼎立이라는 말과 그 의미가 같은데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는 그 권력이 세개로 분리 균형을 이루도록 헌법에 특정되어 있다. 
바로 입법(국회), 사법(감찰), 행정(정부) 이 그것이다. 
역시 우리 대한민국도 권력분립의 핵심적 원리를 뚜렷하게 따르고 있는 민주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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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대통령 선거 15일을 남겨두고 

이재명 대통령 후보자를 기소해서 후보자 신분을 무력화 시킬 목적으로
당시 고등법원에서 무죄선고된 사항에 원고의 항소에서

대법원 판결은 *'파기환송' 백투(되물림)처리를 했는데,
이는 고등법원의 무죄선고가 이의가 있으니 다시 고등법원에서 재심하여

그에 따르는 양형을 판결하라는 것으로써 전례가 없었던 

가장 빠른 졸속적이고 의도적인 판결이었다라고 전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었던 
사법부의 농간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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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삼권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사법부라는 곳의 수장이 바로 조희대다.
비록 파기환송건 뿐만이 아니라, 계엄사태 관련과, 

이재명 대장동 억지 조작 기소사건등, 그 외 수많은 건건들이
지귀연 룸살롱 향응도 그렇고, 윤수괴 정부시절에 관련된 많은 굵직굵직한 사건들도 

정의는 고사하고 마치 암약조직들이 내밀히 공조해 이뤄내는 기소내지 판결들 등이 

이 조희대 사법부 수장 시대의 판속에 이뤄졌던 것이다.

이 조희대라는 자 역시, 후안무치하기가 이를데없다. 
공정하지 못한 처사들이 명명백백하게 증거와 증인 및 관련 행위들로 드러났는데도 

교묘하게 법꾸라지가 되어 말도 안되는 코뮤니케(공개 브리핑)를 발하고, 

능청을 떨면서 아직까지도 사법부의 수장으로 모르쇠하며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그러니 후안무치라는 말보다 더 혹독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철면피'가 아닌지 모르겠다.

어느 나라에서나 

법원건물 앞에는 '정의'를 상징하는 유스티티아_Justitia라는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바로 정의의 여신을 상징하는 조각상이다. 
법에 관련된 공인으로써 일을 하려면 그 여신상 앞에서 선서내지는 맹세를 하는 형식례도

법조인이라면 거의 누구나 예외 없이 필수적으로 이행하고 있는게 관례로 되어있다.
아마 조희대라는 대법관도 틀림없이 그리 했었을 것이다. 
헌데 그자의 선서와 맹세는 이제와서 보니, 

완벽하게 거짓된 것이었다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전례가 없던 괴이한 현상들과 사건, 사태들을 말할 때 

흔히 '정말 희대의 ...... 다' 라고 곧잘 말하곤 한다.
희대_稀代라는 의미는 '당대에 보기가 정말 힘들 정도로...' 라는 것으로 

다음 서술에는 '기이한 현상'이 오는 것을 암시하도록 한다.
대법관이라는 이 자의 이름이 '희대'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역사상,

이렇게 드러내놓고, 노골적이며 능청거리는 대법관의 행태는 전례가 없었으니, 

이게 바로 희대의 기물 혹은 요물 내지는 괴잡스런 작자가 아니겠는가.

비록 개인적 바램일 따름이지만, 

희대란 자가 국민이 원치 않음에 대한 처신을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해야함일진대
수많은 국민들이 귀따가울 정도로 원성을 하고 있는 마당인데도 

굳건히 귀닫고, 입꾹하면서 자리보전이라니 !!!
왜 그의 이름이 '희대'인지를 뒤늦게마나 깨달을 수 있었는데, 

대한민국의 민주시민의 한사람으로써 그저 자괴감만 격하게 든다.

아래에 좀더 자세하게 그가 왜 '희대'의 기물인지 낱낱이 밝혀진 내용을 

박순찬 화백의 카툰과 함께 시민들의 진정한 대변 언론이라 할 수 있는 

'시민언론민들레' 기사 하나를 정리해 포스팅 해본다.
과거 잘못된 역사와 오욕의 진탕에서 

좀비처럼 죽지않고 여지껏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했었던 악마화된 검찰 조직, 
그 토대위에서 사악하고 음흉함을 

법복안에 감추고서 폼째며 으시댔던 법관들의 민낯을 느껴봤으면 싶다.

계엄사태 때 부터 편향되지 않는 개인적 분노가 꽤 많은 글을 쓰게 했었는데, 

그 분노에 무방비적으로 편승하지 않고 정말 냉철하면서도 이성적인 글을 쓰려 

안간힘을 썼었던 기억이 엊그제 처럼 선연하기만 하다.
헌데 그게 그토록 어려운 것이었음을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즉, 이름하여 세상에서 촉발되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난무하고, 

게다가 사악하고 불량스럽기 짝이 없어서 

근묵자흑_近墨者黑  사자성어의 의미처럼 속인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엊그제 6.3 지방 총 선거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참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관리부실적 사태가 벌어진 것도 

'사법부'의 엄중한 책임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기관의 하나로써 

'사법부의 대법관'이 그 수장을 맡아 독립성을 갖고 운영하기에 그렇다.
초유의 현상이 발생해서 나라에 어수선한 난장이 되었던 이런 상황들도

이번 새로운 이재명정부 흔들기 라는 속내로 연출된 것은 아닌지 자꾸만 의심들게 한다.
조희대는 

내란세력, 극우세력과 카르텔적인 정서로 툭하면 사법농간을 자행하고 있는 상황인데다가,
이에 반해 민주당과는 서로 상극지반_相剋之反의 정서가 골깊게 뻗혀 있기에 

그런 연유들이 충분히 가늠도 되고 추상해 볼 수도 있게 한다.

진정 민주주의의 힘은 완벽한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닐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문명에선 결코 완벽한 제도를 정립해서 시행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들의 불합리점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성찰하면서
올바르게 바로잡아 가려는 국민들의 지속적이면서 끈질긴 의지와 노력들이 

정작 우리 모두가 바라는 참스런 민주주의를 발전시켜가는 과정은 아닐런지....

                                                                                                                             Sin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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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환송_破棄還送 : 상급심 법원(주로 대법원)이 하급심 법원의 판결에 법률적 오류가 있다고 판단,

그 판결을 깨뜨리고(파기),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 법원이나 다른 하급심 법원으로 돌려

보내는 것(환송)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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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지방법원), 2심(고등법원) 판결이 나옴.

당사자가 상고하여 대한민국 3심(대법원)에 사건이 올라감.

대법원이 "원심 판결(2심)에 법률 적용이나 판단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대법원은 직접 사실관계를 다시 조사하기보다는 원심 판결을 파기.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하급심으로 돌려보냄 → 파기환송.

--------------------------------------------------------------------------------------------------------

대한민국의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법률심.

즉, 사실관계를 새로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 해석과 적용이 올바른지를 심사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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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관계를 다시 따져야 하는 경우 → 파기환송

추가 심리가 필요 없는 경우파기자판(대법원이 직접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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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환송 예시

2심 법원이 어떤 법 조항을 잘못 해석해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함.

대법원이 "그 법 해석은 잘못되었다"고 판단.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고등법원에 돌려보냄.

참고 관련 용어

상고기각: 대법원이 원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그대로 확정

파기환송: 원심 판결을 깨고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냄

파기자판: 원심 판결을 깨고 대법원이 직접 판결

환송심: 사건을 돌려받아 다시 심리하는 법원의 재판

 

간단히 파기환송은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의 법률상 오류를 인정하여 판결을 취소하고

                                다시 재판하라고 돌려보내는 절차를 말함.                                            Sin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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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찬 화백과 함께 둘러본 뒤틀어진 사법 현장

 

판결문을 읽어내려가던 판사의 입에서 무죄라는 두 글자가 나오자

피고인석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앉은뱅이 주술사는 배시시 웃었다.

지금은 피고인 신분으로 전락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권력 위의 권력'으로 불리던 V0(브이 제로)였다.

 

 

 

앉은뱅이 주술사

장님무사의 어깨 위에 올라앉아 장님무사를 맘대로 부렸는데,

 

그 장님무사로 말하자면,

입만 열면 이놈 저놈 하는 욕설은 기본이요,

툭하면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격노하기 일쑤였고,

'해결사' 검찰을 동원하여 집요하게 정적을 죽이려고 했을 뿐 아니라

피아를 가리지 않고 칼을 휘둘러 가까이 있다가 다치는 측근이 한둘이 아니었다.

 

 

 

 

 

 

*형무등급_刑無等級 과 추물이불양_趣物而不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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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무등급_刑無等級

직역하자면 ‘형벌에는 계급이 없다’는 뜻으로,

형벌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신분·귀천과 무관하게 법이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함을 가리킴.

동시에 형벌이 그만큼 엄중하면

백성이 법을 시험하려 들지 않아서 범죄가 줄어든다는 논리가 그 이면에 숨어 있다고 봄.

 

또 이 말은 같은 법가_法家에 속하는

한비자의 ‘법불아귀_法不阿貴, 법은 귀한 자에게 아첨하지 않는다’와도 일맥상통.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강조할 때 ‘형무등급_刑無等級’‘법불아귀_法不阿貴’가 자주 인용됨. 

 

추물이불양_趣物而不兩

직역하면 '사물로 향할 때(볼 때) 둘이 되지 않는다'가 되는데

의역으로 보충해보면 ‘사물을 대할 때 둘로 나누어 차별하지 아니한다’라는 의미가 됨.

장자_莊子 잡편에 들어 있는 말이며, 공평무사, 형평정대_衡平正大를 뜻하는 말.

[참고]   '취미_趣味, 취향_趣向' 등으로 익숙한 는 走(달릴 )와 取(취할 )가 결합한 형성한자.

             본래 의미는 ‘달리다, 향하다, 뛰어가 취하다’인데 이처럼 ‘달리다/향하다’가 주된 의미 때

             한자의 음을추’로 읽음.

 

이 말은 원문 公而不當 易而無私 決然無主 趣物而不兩... 속에 나오는

'공정하되 마땅하지 아니하고, 평이하되 사사로움이 없으며, 열려 있되 주견이 없고,

사물로 향할 때 둘이 되지 아니하며...'의 일부인데,

장자는 자연의 법도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기 때문에 사물을 대함에 있어서

두 마음을 품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주장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임.

하지만 실은 법가 사상가들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그것을 반박하기 위해서 썼던 말.

즉 장자는 당시 '자연의 공평함'에 토대를 둔 당대의 법가 사상'흙덩이의 도'라 이르며

'살아 있는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도'라고 비판하면서 이 말을 사용했던 것임.

어찌 보면 현 법조계에서 '공평한 재판'을 강조할 때 이 말을 인용해 직유적으로 썼던 것은

原典의 사용 용도에 비춰 보았을 때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고 보여지는 것이 사실임.  .........Sin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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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 주술사의 원격 조종인가? 줄줄이 무죄, 무죄…

줄줄이 사탕이었다.

장님무사를 부리던 앉은뱅이 주술사 김건희

법원의 판사들도 원격 조종을 하는지,

선생님이라 부르며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진짜 주술사' 명태균에게도 무죄가 선고됐고,

 

원하는 대로 여론조사 수치를 뽑아내는 재주가 있는 명태균 덕분에

'해주라고 했는데 말이 많은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된 김영선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헌재장님무사에게 파면 결정을 내리자

해외로 도피성 출국을 했던 '김건희의 집사' 김예성도 무죄를 받았고,

 

김건희의 그림 취향까지 파악하여 억대의 그림을 상납하며

공천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도 되는 듯이 행세하던 '정치 지망생' 검사 김상민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지라

상식적인 판단을 하는 멀쩡한 사람이면 당연히 유죄 판결이 나올 거라 예상했는데,

 

상식을 배신한 무죄 판결의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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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의 심증은 넉넉하게 있으나,

유죄라는 걸 의심할 여지가 없이 증거로 완벽하게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유명한 법언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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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괴를 풍자한 눈가림 수건에 '좋빠가'라는 말이 붙어있다. 혹시, 이말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SinEun)

https://m.blog.naver.com/aflashofhope/222719004328

 

 

 

법망이라는 신성한 하늘의 그물은 성기어 보여도 촘촘하여,

그 어떤 죄인도 다 걸러내는 초정밀에 고성능이라 했는데,

이 땅의 그물은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약자에게만 대단히 촘촘한 듯하다.

 

요금함에서 2400원을 착복했다는 이유로

버스기사를 쫓아낸 회사의 해고 결정은 타당하다고 판결하고,

 

야근하다 남의 사무실에 있는 초코파이 하나를 허락 없이 먹어도 절도죄로 얽어매면서,

특권층을 위해 복무하는 법기술자들에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탄식이 땅을 뒤덮었다.

 

 

 

 

 

 

 

법 기술의 도구로 전락한 법언 *'In dubio pro reo'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은 언제 왜 생겨났을까?

궁금하여 AI에게 물어보니,

로마의 법학자 울피아누스

'누구도 단지 의심만으로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는 명언을 남겼고,

 

근대 형법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의 포이어바흐

국가가 범죄 사실을 완벽하게 입증하지 못하면 그 불이익은 국가가 져야지

피고인이 져서는 안 된다는 법학 이론으로 정립했다고 알려준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 이론은 법 앞에서의 평등을 누리지 못하는 약자들을 위한 법지성인의 고뇌의 산물일 것이다.

 

그런데 우인성 판사는 어려운 고사성어를 인용하며

'차별 없는 평등'을 말하더니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무죄를 선고하였다.

 
 
 
 

*in dubio pro reo(인 두비오 프로 레오) 아래 포스팅 말미에 부록으로 설명함.

 


 
 
 
 
 
 
 
 

기자로 살면서 많이 들었던

'열 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도둑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격언 역시 그런 의미(법 앞에서의 평등을 누리지 못하는 약자들을 위한)일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윤썩열 정권하의 사법부)에선 그 격언( '열 명의 도둑을 놓치더......)이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를 만들어 씌워 억울한 도둑을 만들면서

 

진짜 큰 도둑에겐 수사하지 않거나 기소하지 않거나

현미경 들이대고 공소장의 활자 크기와 법조문의 활자 크기를 비교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으면

무죄 판결로 면죄부를 주는 법 기술의 도구로 변질되어 버렸다.

 

 

 

 

 

'공직' 올라갈 때마다 쑥쑥 재산 불어난 '마녀사냥꾼' 곽상도

이른바 '50억 클럽'곽상도 부자에게도 판결상황이 위처럼 그러하다.

 

곽상도검사 출신이다.

검사 시절에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조작에 관여했다고 의심받는 곽상도 검사가

공직자 재산 공개법에 따라 2008년에 신고한 재산은 6억 9천만 원이었다.

2009년 퇴직 후에 변호사로 활동하다

2013년에 박근혜 청와대의 민정수석에 임명되었는데,

그해에 신고한 재산은 29억 4400만 원이었다.

 

검찰 퇴직하고 4년 만에 재산을 무려 23억 원이나 늘렸다.

2016년 20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신고한 재산 31억 원이었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38억 7417만 원으로 신고했다.

공직 기강을 살피던 시절에도,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하는 시절에도, 곽상도의 재산은 쑥쑥 불어났다.

 

 

문재인 가족 스토커로도 이름을 날린 곽상도에겐 '특별한 재주'가 있다.

99%의 '뇌피셜'에 1%의 사실을 보태 기자들을 유인하여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확산하도록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바로 그것이다.

 

그 재주로 '윤미향 마녀사냥' 당시 기자들을 사냥개처럼 몰고 다니며 윤미향 사냥을 했고

그 와중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정성껏 보살피던 쉼터 소장 손영미 님

마녀사냥의 공포에 질려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재산 불리기에 있어서 곽상도 아들은 이보다 더 한 수 위였다.

 

아버지(곽상도)의 알선으로

전공과 아무 관련이 없는 김만배의 화천대유에 취직한 곽상도의 아들은

6년 근무하고 대리급으로 퇴직하면서 무려 50억 원의 퇴직금을 받았다.

 

판사가 보기에도 무척 이상했을 것이다.

대장동 사업과 관련된 뇌물이라는 심증상식에 부합하나

'의심할 여지가 없이' 완벽하게 증거로 입증하지 못했다며

아버지(곽상도)에게도 곽상도 아들에게도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날 곽상도는 활짝 웃었고 아들도 숨어서 오글거리면서 웃었을 것이다.

 

 

 

곽상도 전 의원이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를 마친 뒤 입장을 밝히며 밝게 웃고 있다. 이날 법원은 '대장동 50억 클럽' 관련 범죄 수익을 은닉한 혐의를 받는 곽 의원에 대한 공소를 기각했다. 2026.2.6 [공동취재] 연합뉴스

 

 

 

 

 

 

 

곽상도 부자, 명태균처럼, 윤석열도 웃지나 않을까? 섬뜩한 공포

최고 권력자(윤썩열)

'공천을 주라고 했는데 말이 많네' 하는 육성 녹음이 있어도 재판 과정에서 증거가 되지 못하고(무시되고),

주문자 생산방식(OEM)의 여론조사 보고서를 상납하고 그 대가로 공천을 부탁했는데,

자기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이라 여론조사를 했을 것이니 청탁의 대가라 볼 수 없고,

불법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또는 공천 청탁의 대가로 돈을 주었으나 차용증이 있으니 돈을 빌려준 것이고,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아들에게 50억 원을 주었는데 아버지에게 주는 뇌물이라는 증거가 없으니 무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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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핏하면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판결이 나올 때마다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이 퍼뜩 생각이 난다.

 

한 아기를 두고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기라며 싸운다.

누가 진짜 엄마라는 증거는 없다.

CCTV가 없고 DNA 검사로 친자 확인을 할 수도 없던 시절이다.

솔로몬 왕은 판결한다.

두 여인이 모두 엄마라고 하니 공평하게 아기를 반으로 갈라 가지라고.

가짜 엄마는 판결에 승복하는데 진짜 엄마가 사색이 되어 왕에게 매달린다.

내 아이가 아니어도 좋으니 제발 그 판결을 취소해달라고.

왕은 다시 판결한다.

이 여인이 진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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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총체적 부실과 파행적 위기를 그나마 법견이 총명하고 지혜로운 판관 '이진관' 판사가 이를 구해보려고 독야청청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상징화한 카툰의 한 장면. 한덕수는 내란동조자라는 혐의로 이진관 판사로 부터 고등법원에서 징역 23년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았다.

 

 

 

 

왜 우리 판사들에겐 그런 지혜가 없을까.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법언은 자구 능력이 없는 약자들을 보호하라는 것인데,

 

'권력 위의 권력'으로 군림하던 김건희에게 그 법언을 적용하면서

해당 판결을 한 판사 본인은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았을까.

아니면 철면피_鐵面皮라서 낮짝 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덕스러운 표정이었을까.

 

'마녀 사냥꾼' 곽상도에게 그 법언을 적용하면서 자괴감이 들지 않았을까.

혹시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에게도 똑같이

그런 상황이 역시나 하고 벌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만으로도 섬뜩한 공포가 온몸을 엄습한다.

 

 

 

 

사법개혁 자초하는 '희대의 판사들'

오차범위가 커서 들쭉날쭉한 통계는 통계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처럼

판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판사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판결이 나오고,

판결의 대상이 누군가에 따라 창도 되고 방패도 된다면,

힘 있는 자에겐 성긴 그물이고 힘없는 자에겐 촘촘한 그물이라면,

 

그런 판결을 밥먹듯 해대는 사법부를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

 

 

사법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작금의 시대처럼 절박한 때가 있었나 싶다.

또한 그런 이슈가 된건 사법부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윤석열에게만 구속일수를 날이 아닌 시간으로 적용지귀연 판사'구속 취소 결정'불을 붙였고,

윤석열의 정적 이재명의 대선 출마를 원천 봉쇄하려는 의도가 명백한 '희대의 파기환송'기름을 부었고,

줄줄이 사탕으로 이어진 곽상도 부자 무죄, 김건희 무죄, 명태균-김영선 무죄, 김예성 무죄, 김상민 무죄

번갈아 가며 부채질을 하였다.

 

 

 

 

 

 

 

 

 

조희대 대법원장 '닥치고 반대'는 도둑이 곤장 치켜 든 형국

그런데도 조희대 대법원장

대법관 증원도 반대, 재판소원도 반대, 법 왜곡죄도 반대한다.

 

사법개혁에는 '닥치고 반대'라는 것 같다.

마치 내 세상을 왜 네가 손을 대느냐고 되레 화를 내는 형국과 같다.

적반하장이란 고사성어와 방귀 뀐 놈이 성을 낸다는 속담은 이럴 때 쓰는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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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이 늘어나 분야별로 전문화되면,

소송 기간이 짧아지고 판결의 신뢰도가 높아져 수혜자는 국민이 된다.

재판소원이나 법 왜곡죄가 도입되어 판사들이 재판에 더 충실하게 되고

들쭉날쭉한 판결이 줄어들면 그 수혜자 역시 국민이다.

**********************************************************************************************

 

그런데도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법개혁에 반대한다.

입으로는 국민을 위해 반대한다지만,

사법부의 독립을 국민으로부터의 독립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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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보편적 상식을 벗어나는 판결까지 존중할 순 없다.

들쭉날쭉한 판결을 하는 법원을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존중할 수 있는 판결이어야 법원을 신뢰하고,

그런 신뢰가 쌓여 누구나 승복하는 권위가 되어야 판결 불복, 소송 남발이 줄고

사회의 신뢰지수가 높아지고 불신으로 인한 사회비용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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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사법부는 '닥치고' 개혁 반대가 아니라

스스로 신뢰를 다지는 성찰의 모습을 보여야 하며

환골탈태를 위한 처절한 자정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바로 지금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볼 때 절대적으로 그래야 할 때다.

 

 

 

시민언론민들레

songyoh24@gmail.com 송요훈 편집위원 2026. 2. 15. 11:23

https://v.daum.net/v/20260215112324132

 

 

 

[덧붙임]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술떡용짜리

박순찬 2026. 6. 23. 07:48 박순찬 기자

 

 

내란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를 받는 박성재 전 장관에게 1심 재판부가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특검으로부터 20년을 구형받으며

"대통령 설득을 실패한 데 대해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구형량보다 5년이 많은 25년을 선고받은 것이다.

 

이진관 재판장

"박성재는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으나,

박성재가 보여준 태도에 비춰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약 30년간 검사로 재직한 것도 범행에 비추어 유리한 정상으로 삼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 시절 권세를 누렸던 사람들이

이제는 내란범들이 되어 수괴와 함께 쇠창살에 갇혀 있다.

권력만을 바라보며 국민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 부록 ]

*in dubio pro reo(인 두비오 프로 레오) 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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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의심이 남아있다면
범인으로 판단할 수 없을 것, 진실은 오직 神만이 안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 흥미롭게 접했던 것이 라틴어 법 격언들이었다.

“pacta sunt servanda, bona fides, da mich factum dabo tibi ius, nullum crimen, nulla poena sine lege,

in dubio pro reo”.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라틴어로 된 법 격언들을 외우면서 왠지 모를 성취감을 느꼈던 것이 아니었나 한다.

물론 그 라틴어 법 격언들이 갖는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달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근대 형사법의 대원칙무죄추정의 원칙을 말하는

“in dubio pro reo(의심스러운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의 의미 역시

변호사로서 형사사건의 변호 경험을 어느 정도 쌓은 다음에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in dubio pro reo는 헌법상 원칙이며 기본권이다.

헌법에 이어 형사소송법 제275조의2도 이를 규정하고 있고,

특히 형사소송법 제307조는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에 이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불구속수사 및 재판의 원칙, 검사의 입증책임,구속 피고인이 평상복을 입고 출석하는 것 등도

모두 in dubio pro reo의 정신에 기반한 것이다.

 

이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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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dubio pro reo

무고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하여

수사에서부터 판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과 절차를 규율하고,

판단을 통제하는 절차적·실체적 양면에 걸친 대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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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상 구속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의 혐의사실이나 공소장의 공소사실을 보면,

객관적 사실 외에도 작성자의 주관적 추론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음을 보게 된다.

 

작성자는 범죄혐의를 부각시키고,

기소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하여 증거에 의하여 뒷받침되지 않는 사실

주관적 추론을 통해 주관적 확신으로 전환시키고 다시 객관적 사실로 변환시킨다.

 

주관적 판단에 기초한 주관적 사실이 객관적 증거에 기초한 객관적 사실로 전환되고,

존재하는 의심은 주관적 추론을 통해 숨겨진다.

 

주관적 추론을 깨뜨리고 숨겨진 의심을 드러내기 위하여는 지난(至難)한 노력과 시간이 요구된다.

몇 년이 걸릴 수도, 때로는 몇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판결은 공소사실을 그대로 범죄사실로 전재한다.

 

공소사실에 주관적 추론과 객관적 사실이 뒤섞여 있는 경우

주관적 추론도 모두 객관적 사실로서 판결에 기재된다.

 

판결에 기재된 사실이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추론에 불과하다는 입증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고의 판단에 있어 엄격한 객관적 척도와 달리 과실 판단에 있어서는 느슨한 주관적 척도가 적용된다.

결과로부터 역추론되는 법관의 주관적 확신이 객관적 확증을 대체하며 유무죄 판단을 하게 된다.

형사사법의 현실은 in dubio pro reo의 정신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로마의 유명한 정치인이자 웅변가, 법률가인 키케로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아들에 대한 변호에서 배심원들을 향하여 거듭하여 물었다.

“이 사건에서 누가 이익을 보았습니까?”

유력한 증인들의 증언은 아들이 진범임을 지목하고 있음에도 배심원들은 무죄로 평결한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모든 것을 잃은 아들이 범인이라는 데에 합리적 의심이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모든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합리적 의심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범인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in dubio pro reo이다.

진실은 오직 신(神)만이 안다.

그러기에 인간이 신의 판단을 대체할 수는 없다.

in dubio pro reo는 우리에게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할 것을 명령한다.

인간 존재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은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이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인간 존재의 한계를 벗어난 판단에 대해 누가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인가?

in dubio pro reo는 이에 대한 해답이다.

 

그러기에 기소나 유죄판단을 위하여 사실관계 인정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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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추론을 동원하거나, 법리를 무리하게 변경하고 확장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시도는 구체적 타당성의 미명하에 잘못된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인류문명의 진보 속에 피와 땀으로 세운 in dubio pro reo 원칙을 무너뜨리고,

법치와 인권을 허무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

 

in dubio pro reo는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인간존재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오만을 버릴 것을. 우리는 이에 대한 가부(可否)의 답을 해야 한다.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입력 2024.01.24 12:32

https://www.law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5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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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당신은 전형적인 약자로서의 피고인인가요? ---유죄_有罪

아니면

오블리제 탈을 쓴 파워엘리트라는 권력의 중심에 있는 강자로서의 피고인인가?---무죄_無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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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dubio pro reo라는 법언대로 판결의 사법적 대원칙

오염된 판관들로 인하여

무전유죄_無錢有罪, 유전무죄_有錢無罪라는 악마의 도구로 전락되지 않기를.........SinEun

 

 

 

 

 

 

 

이 포스팅 글은 위에 표시한 링크에서 옮겨온 글이며, 제목을 바꾸었고

가독성을 위해 위 링크글 원문을 약간 편집 수정(오자,탈자,삭제 및 약간의 첨언)

보조 설명을 추가했으며, 글꼴색을 자의적으로 달리 표현했음을 밝힙니다.

사진은 적절한 리터칭 작업을 했습니다.

문장은 가독성과 문맥의 의미를 용이하게 하려고 분절 줄바꿈 처리 했음을 또한 밝힙니다. Sin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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