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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한곳을 지긋이 바라봅니다.
그의 시선 끝에는 한 소녀가 서 있습니다.
꽃을 보면서 까르르 웃는 한 소녀에게서 그는 눈을 떼지 못했지요.
17살이 갓 지난 소녀는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인 역시 그를 사랑스럽게 여겼지요.

 

          프랑스 화가 마리 드니즈 발레의 A woman‘s study from life.
                                       
 
 

아무리 자유로운 영혼이라지만 노인의 나이는 벌써 72세.
둘의 나이 차이는 50살이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기어이 그녀에게 ‘청혼’의 뜻을 전하지요.
노욕에 가득 찬 범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기의 대문호 괴테의 일화입니다.
사랑을 문학의 동력으로 삼은 그를 사색합니다.


          “사랑은 숫자에 불과하다네 하하.” 독일화가 요제프 칼 슈틸러가 1828년 그린 노년의 괴테.
 
 
 
사랑을 문학의 원동력으로 삼은 남자, 괴테

노년의 사랑에서 보듯, 괴테의 삶은 꽤 욕망에 충실한 삶이었습니다
삶의 주기마다 불같은 사랑이 찾아왔고, 열정이 불탄 자리엔 문학이 자랐습니다.
첫사랑부터 끝사랑까지, 빠짐없이 명작을 남겼다는 점에서 그는 타고난 작가였지요.
괴테를 알기 위해서는 괴테의 연인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독일 화가 게오르크 멜키오르 크라우스가 1775년 즈음 그린 괴테.


괴테는 젊은시절부터 꽤나 많은 사랑을 한 정열의 사나이였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줄여 괴테로 통용되는 이 사내는 174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시민 계급의 아들이었지요.
독일 북부 지역 법률가인 아버지로부터는 근면한 생활태도를 배웠고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자 예술을 사랑하는 어머니로부터는 이야기를 짓는 능력을 물려받았지요.
서민 집안에서도 유복했고 그 덕에 마음껏 고등교육을 받고 자랍니다.



우연히 빠진 삼각관계...대작의 씨앗

16살 때 라이프치히에 입학하면서 그는 몇몇 풋사랑을 경험하지요.
보다 강렬한 사랑의 경험은 그가 23살이던 해 찾아옵니다.
인구 5000명의 작은 도시 베츨라르에서였습니다.
변호사 경력을 시작하려고 이곳을 찾았습니다.





                                          괴테가 근무한 독일 베츨라르 사무실. <사진=Andreas Praefcke>



새 도시의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도시는 유서 깊었지만, 인습이 켜켜이 쌓여있는 느낌을 풍겼기 때문입니다.
낯선 법원에서 변호사로서의 경력 시작하는 것에도 두려움이 앞섰지요.

“혹시 연인 있으세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보다는 불안이 가득한 나날이었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불현히 찾아왔지요.
무도회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만난 ‘그녀’ 때문이었습니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아침이슬처럼 영롱함으로 가득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을 소재로 가벼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샬럿 버프라는 것까지 알게 됐지요.



샬럿 버프 초상




샬럿 버프와 그녀의 약혼자 캐스트너와의 삼각관계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이어졌다.
기대는 언제나 실망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무도회장에서 그녀가 어떤 남자의 손을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약혼자가 있었던 몸이지요.
잠깐이나마 두 사람 사이에서 서성이던 괴테.
샬럿테의 약혼자였던 캐스트너와도 우정을 잠시 쌓았지만, 공허함은 커집니다.
결국 샬럿테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하지요.
 
 
 
반(半)자전적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문학이 나를 구원하리...”

괴테는 사랑으로부터 저주받았고, 문학으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사랑의 생채기를 자신만의 미문(美文)으로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사랑에 아파하는 유럽의 시민들 역시 그의 문학에 공명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두 번째 사랑이 끝났을 때 만든 작품이 그랬지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입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774년 초판본. <저작권자=H.-P.Haack>



주인공 베르테르는 삼각관계에 괴로워하다
사랑하는 여인 로테가 자신의 라이벌과 결혼하자 죽음을 결심합니다.
마치 젊은 괴테가 샬롯테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괴로워하듯이요.
괴테의 친구인 칼 빌헬름 예루살렘 역시 약혼자가 있는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후
고뇌하다가 죽음을 택했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두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지요.
 
 
 
유럽의 스타작가가 된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유럽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20대 중반의 작가 괴테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요.
유럽의 모든 귀부인과 고관대작들이 그와의 만남을 기대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베르테르 열병’이란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었지요.
젊은이들은 작품 속 베르테르처럼 옷을 입었고,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소설을 읽고 따라 자살하는 일까지 생겼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지요.
기독교 국가에서는 ‘자살’은 죄악과 같았기에, 덴마크와 이탈리아에서 이 소설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자살한 베르테르의 무덤을 찾은 샬롯을 묘사한 그림. 작자미상 1790년대 작품.
 
 
 
 
이 작품이 당시 유럽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건 전형적인 격식을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주제와 표현방식에서 보더라도 틀에서 벗어났지요.
사랑에 아파하고, 정열이 불러온 격정적인 감정의 에너지를 그는 고스란히 담아 냈습니다.
베르테르는 세상과 조화하지 못하고 자신의 정열 떄문에 스스로를 파괴하는 낭만적인 ‘영웅’의 원형이었습니다.
 
 
 
           베르테르와 샬롯을 묘사한 그림. 두 사람의 사랑이 이뤄진 것을 상상해 그린 그림으로 추정된다. 18세기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그저 ‘치정극’으로만 해석되지 않는 깊이를 보여줍니다.
작품 속에서는 부와 권력을 독점한 봉건 귀족 계급에 의해 좌절하는 베르테르의 모습을 묘사하면서입니다.
사회의 위선을 베르테르의 눈을 빌려 고발했던 것이지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귀족은 될 수 없었던 괴테 본인의 문제의식을 작품으로 녹여냈던 셈입니다.
이전 문학이 전설·역사를 주제로 현실과 괴리된 것과는 명확히 달랐지요.
괴테는 그만의 독창적 ‘리얼리즘’을 구현한 작가였습니다.
 
 
 
 
‘질풍노도’ 문예사조를 이끈 괴테
 
모든 대문호가 그러하듯, 괴테의 이전과 이후의 문학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서 개인적 체험을 담아낸 작품들이 많아지면서입니다.
우리나라 말로 ‘질풍노도’라고 불리는 ‘슈트룸 운트 드랑’ 운동이었습니다.
독일문학은 이제 유럽의 중심으로 발돋움하지요.
영국에서는 문화적인 유행이었고, 나폴레옹은 이를 7번이나 정독한 걸로 유명합니다.
문학사가들은 이 시기를 ‘괴테의 시대(Goethezeit·괴테자이트)’라고도 불렀지요.
 
 
 
           “괴테, 나도 당신의 책을 보고 울었다오.”
           괴테의 후원자가 되어준 작센-바이마르대공 샤를 아우구스투스의 초상화(1757-1828). 독일 화가 하인리히 콜베의 작품.
 
 
 
 
그는 더 이상 ’서민‘ 괴테가 아니었습니다.
바이마르 공국의 공작 칼 아우구스트가 그를 직접 궁전에 초빙한 뒤였습니다.
공작은 괴테를 직접 궁전의 수석 고문으로 임명하지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이름에 귀족에게만 붙는 ’Von‘이 붙는 이유입니다.
전폭적인 후원 아래 여러 인사들과 우정을 쌓았지요.
’빌헬름 텔‘로 유명한 독일의 대표작가 중 하나인 프리드리히 실러도 그 중 한명이었습니다.
 
 
 
 

 

           독일의 또 다른 대문호인 [ 프리드리히 쉴러 ] 는 괴테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금지된 사랑을 즐긴 괴테
 
“부인, 사랑합니다. 당신이 남편이 있더라도요.”

성적 욕망을 그는 문학의 불쏘시개로 삼았습니다.
바이마르 공국에서 머물 때에는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7살 연상의 샬로테 폰 슈타인이라는 여인과 사랑을 속삭이면서 이를 작품으로 소화했지요.
그녀가 유부녀였던 탓에 사랑은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런데도 편지를 1800통이나 주고받을 정도로 깊은 관계를 이어 나갔지요.
’쉴 사이 없는 사랑‘, ’달에게‘ 등 그녀와의 사랑을 찬미합니다.

“사랑이여, 너는 삶의 왕관이다. 쉴 사이 없는 행복이다.” -쉴 사이 없는 사랑 中-

 

 

           7살 연상의 유부녀였음에도 괴테와 정신적 사랑을 나눈 샬럿 폰 슈타인
 
 
 
괴테의 문학 인생에서 “최고로 정열적인 상태의 산물”은 ’마리엔바트 비가‘였습니다.
그의 나이 74살인 1823년에 쓴 작품이었지요. 19살 소녀와의 결혼이 물거품 된 뒤의 감정을 담았습니다.

괴테는 2년 전 만난 울리케 본 레베초브에게 끌렸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나이를 되뇌면서 아버지와 같은 마음의 애착을 보여주곤 했었지요.
그런데 어느새 그 마음은 사랑과 정열로 변했습니다.
침대에 누운 노인은 밤마다 소녀와의 사랑을 상상하면서 잠들곤 했었지요.
마치 사춘기 소년처럼요.
15년 전에 울리케의 어머니를 사랑했던 기억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괴테의 마지막 사랑으로 통하는 울리케 폰 레베초브.
 
 
 
 
둘의 나이 차이는 55살이었다.
오랜 기간 마음을 키워 온 괴테였습니다.
삶이 끝나기 전에 그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싶었지요.
그는 자신의 주군이자 친구이기도 한 바이마르 공작에게 ’청혼‘의 의사를 대신 전달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녀의 대답은 완곡한 거절로 전해집니다.
시의 제목이 ’마리엔바트의 비가‘인 이유이지요.

슬픔과 비애로 가득했지만, 그는 다시 책상에 앉았습니다.
수도원의 수도승마냥, 시구(詩句)와 시어(詩語)를 모아 자신의 마음을 써 내려갔지요.

 

 

 

           요한 티슈바인이 그린 이탈리아 여행 중인 괴테

 
괴테는 어릴 적부터 노년까지 끊임없이 사랑을 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고전주의를 자신의 작품에 녹였다.
“인간이 고통 속에서 침묵할 때, 신은 내게 고통받음을 말할 재능을 주셨네.
···떨칠 수 없는 그리움만이 나를 이리저리 몰고 다니네,
끝없는 눈물만이 남아있네.” -마리엔바트 비가 中-

황혼에 접어든 노인의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격정이 묻어납니다.
사랑의 정열을 온전히 품을 수 있었기에 마지막까지 괴테가 펜을 쥘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불후의 명작 ‘파우스트’ 뒤에는 실연의 상처 있었다
 
마지막 사랑이 끝난 뒤엔, 마지막 정리도 함께 시작됩니다.
그가 미처 쓰다만 여러 작품이 토막 나 있었고, 흩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려 60년 동안이나 완결을 짓지 못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파우스트‘였습니다.
악마 메피스토로부터 세상의 온갖 명예·부를 가질 수 있다는 유혹을 받는 현자 파우스트의 이야기지요.
 
 
           프랑스 화가 장 폴 로렌스가 그린 파우스트 박사.
 
 
 
 
괴테의 작품이 대성공을 거둔 이후 예술계에서 파우스트는 단골 소재로 자리매김했다.
현자 파우스트가 악마로부터 힘을 받은 후 한 첫 번째 행동은
10대 소녀이자 순수하고 순결한 그레트헨을 유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레트헨은 실제로 괴테의 첫사랑 이름이었지요.
실패한 첫사랑을 모델로 삼아 문학으로 구현한 것이었습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1793년 그린 모젤강 인근.
 
 
 
 
 
프랑스 국경을 표시하는 기둥에는 ‘Cette terre est libre’(이 땅은 자유다)고 적혀있다.
그는 문학과 그림에도 소질이 있는 팔방미인이었다.
현자 파우스트는 물론 괴테 본인이었지요.
문학이 그리는 허구세계에서라도 그는 사랑을 완성하고자 했던 것이었을까요.
괴테의 첫사랑인 그레트헨은 파우스트의 첫 문장을 쓰게 했고
그의 마지막 사랑 울리케는 파우스트를 매조짓게 했습니다.
70대 노인의 노욕이 시대를 정의하는 명작의 동력이었던 셈이지요.
 
 
 
 
 
죽음 뒤에도 이어진 괴테의 시대
 
죽음 이후에도 ’괴테자이트‘(괴테의시대)는 계속됐습니다.
후대의 음악가와 철학자들이 그의 작품을 ’추앙‘했기 때문이었지요.
베토벤은 파우스트를 오페라로 만들 계획도 세웠을 정도입니다.
베토벤은 공공연히 “파우스트 교향곡은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바이마르에 마련된 두 사람의 동상

 
 
괴테와 실러는 독일 문학을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꼽히는 인물들이다.
영국의 작가 토머스 칼라일은 괴테와 연관된 수많은 작품으로 그를 기렸습니다.
1919년 독일의 제헌의회가 헌법을 작성하고
승인한 장소로 수도 베를린이 아닌 바이마르를 선택한 것 역시 괴테의 영향으로 알려졌지요.
 

“예술가에게 자유를
그러면 그들은 더 큰 세계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는 격언
괴테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반면 방종에 가까운 자유를 누리며, 빈약한 상상력의 예술가들이 이 땅에는 너무 많습니다.

 

 

1999년 발행된 괴테 기념 우표.

 
 

ㅇ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사랑을 문학 창조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ㅇ약혼자가 있는 여인을 사랑한 뒤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다.
ㅇ74세에 19살 소녀에게 청혼한 뒤 거절당했다. 이 아쉬움으로 ‘파우스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ㅇ우리는 괴테가 아니다. 사랑에도 선을 지키자.

 

<참고 문헌>

ㅇ요한 페터 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민음사, 2008년

ㅇ이상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타 사실성과 허구성, 한국외대 외국문화연구소, 2000년

ㅇ슈테판 츠바이크, 광기와 우연의 역사, 자작나무, 1996년

 

 

 

이글은 아래 강영운 기자님이 쓴 기사의 글을 옮겨온 글이며

글 제목을 수정하고 가독성을 위해 사진과 글을 미미하게 수정을 했음을 아울러 밝힙니다.

매일신문의 강영운 기자 penkang@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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