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디히말_마차푸차레 트레킹 등정記

 

 

 

 

 

 

 

 

 

 

프롤로그 



서로 다른 골목 달리던 다섯 개의 그림자가
세월 따라 무지개빛 꿈 조금씩 달라졌지만
눈빛만 봐도 웃음 폭죽 터지는 오인방이
저어기 네팔 하늘동산에 발자국 남기려 하네
미래로 간 철부지들 우리 이름 기억하겠지
우정이여 샘솟듯, 하늘길 위 오래 피어오르길

 

 

올 여름은 정말 무덥고 지리한 여름이었다. 
폭염의 정점 시기에(6월 30일) 나(원시인) 포함 친구 오인방은 울산에서 모임을 가졌다.
원시인외 세친구들은 내 모르는 만남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좌우지간 원시인을 포함한 오인방 모임은 강산이 한 번 변할 만큼 실로 오랫만의 만남이었다.
그리 오래도록 만남이 이뤄지지 못했던 근본적 이유는 내 자신의 건강악화 때문이었다.
 
울산에는 근사하고 멋드러진 친구(이하 박교수 혹은 서근이라 칭함)가 살고 있는 곳이다.
원래 과거 오인방 모임은 1박 2일이 보통이었었는데, 
네팔에 사는 친구(오야지)가 출국일정 때문에 곤란하다는 이유로 당일치기로 정해진 모임이었다.

유일하게 뚜벅이인 나(원시인)는 기차를 타고 태화강역에서 내렸고, 
박교수는 시간에 맞춰 원시인을 차로 맞아주었다.
원시인을 태우고 나서 오너드라이버들이지만 열차를 타고 신울산역으로 내려온 
쵸크와 오야지를 맞이하기 위해 그쪽으로 이동했고, 
마침내 오인방은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울산에서 감동의 재회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박교수는 모든 면들이 그저 스마트하다.
외모도 물론 그렇지만 깔끔한 언행도 그렇고 
시간을 조율하거나 일정을 기획하는 것도 주도면밀한 친우다.
모이는 친구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담소를 즐길것이며, 
어떤 곳에서 즐거운 점심식사를 할 것인지,
다음엔 워킹과 시간을 따져서 도시 근교의 맛거리 풍경이나 경승지를 돌아 볼 것이며, 
이내 시간이 다 되어 각자들 집으로 돌아가기전 섭섭하지 않도록 
맛거리 저녁 식사를 하는 것 까지 완벽하게 스케줄 마무리를 머리에 꿰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시인은 태화강역으로 쵸크와 오야지는 신울산역으로 실어 나르는 드라이버 노릇까지 
완벽하게 친우들을 위해 아낌없는 봉사를 살신성인처럼 하는 그야말로 최고의 친구다.

 

한여름 폭염속에서 살이 익어버릴 정도로 정신이 가물거리는 만남의 당일 일정이었지만,
서근친구의 아낌없는 친구들을 위한 배려때문에 
그런 후덕함을 입는 친우들로서는 그만 가혹한 무더위조차 잊은듯 했다.

도착하자 마자 갔었던 곳은 대궐처럼 거대한 초현대식 건물로 된 찻집이었다.
약 한시간 정도 찾집에서 화기애애한 담소로 대화를 해맑은 표정들로 이어갔고, 
다음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했다.

점심을 먹고, 멋드러지고 강인한 해송의 바닷가, 그 바닷가 암반을 기어다니며 해맑게 핀

'바닷가 찔레꽃'이 아름다웠던 대왕암 관광지를 두루두루 산책하면서 담소와 폭소를 곁들였고

아름다운 절경들을 눈과 가슴에 담았다. 

끊임없는 담소는 행복의 절정이었다.

 

현대조선소 근처를 스쳐지나 울진의 공원산책과 바닷가 진풍경을 배경으로 한 폐교와 등대를 구경 했다.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박교수는 특별하게 고래고기를 먹게 해 주겠다고 생각해 둔 곳으로 갔으나 
그날은 그 식당이 영업을 하지 않는 휴점일이었던 때문에 서근의 풍성했던 덕 하나가 날아가 버렸다.
그대신 어딘지 모를 바닷가 해안가의 허름한 식당으로 이동해서 오장육부까지 얼얼할 정도의 냉-물회를 시켜 
'아으 !'하고 기가막히게도 잘먹었다.
쵸크하고 원시인은 물회에 곁들어 소주 두 잔 정도를 마셨고, 그걸 끝으로 한여름 뙤약볕의 폭염속에서 
오랜 세월을 뛰어 넘었던 당일치기 짧은 만남은 가슴가득 행복한 마음에 철철 넘치도록 담고 막을 내렸다.

 

만나자 마자 갔었던 찾집에서의 대화 중, 다들 이제 몇 번이나 서로 얼굴을 볼 것인가 공감이 작용되어
주기적 만남에 대해 서로 간절한 의식으로 대화가 오고갔는데 다음 만남은 어디로 할 것인가가 거론되었다.
오야지가 네팔에 있기에 여의치 않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 쵸크가 네팔에서의 만남을 제시했다.
설마가 사람잡는다고.... 그렇게 간단하게 대화 몇 마디에 그게 그리 확정될 일이겠느냐 라는 생각은 오인방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각자 집으로 원대 복귀하고 10일 정도 지났을 때 였는지.... 톡 그룹대화방이 날라오고, 
그곳에서 네팔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급 추진 되는 바람에 원시인은 
겨를없이 난생처음 해외여행을 하게 되는 행운(?)이자 심히 부담을 느껴야할 상황을 맞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급하고 쉽게 뜬구름같은 느낌의 해외여행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줄은 원시인은 미처 몰랐다.
게다가 그냥 네팔이란 나라를 관광차원에서 힘들지 않게 여행하는 것만을 염두에 두었던 해외여행이 아니었다.
톡을 통한 친구들끼리 대화에서 그것이 원시인이 의도한 바하고는 전혀 엉뚱한 내용의 여행 전모가 
하나둘 씩 드러났는데 그럴 때 마다 해외여행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갈등들이 심경에 짖쳐들었다.
즉, 그것은 관광이란 여행속에 좀 특별한 관광(해발 4천에서 오천에 이르는 거의 전문 트레킹 코스 섭렵) 이었다.

 

일단은 오인방과 함께 하고픈 원시인의 욕망이 너무 컸던지라, 
친구들이 원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의 트레킹 목적의 여행에 자신의 건강적 측면이 
부합하기 힘들지 않겠냐라는 염려로 인해 마음속은 매일 치열한 갈등들이 난무했다.
결국 원시인은 사랑하는 연인의 극구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만 그에 동참하겠다라는 것에 확단을 내리고야 말았다.

내 별명이 원시인이었던 것과 당연 동질적 상징성처럼 마찬가지로 해외여행에 관해서는 생애 완전 초짜였다.
톡을 통해 친구들 서로 대화하는 내용들은 알아듣기 힘든 내용들도 많았고,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서 무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것들이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다행히 그런 원시인을 위해서 , 박교수 쵸크 오야지들이 함께 대화를 틈나는대로 해 주는 바람에 
서당개 삼년처럼 귀동냥으로 얻어 들으며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결국 여권을 만들었고, 오야지가 말하는데로 경비를 보냈으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친절한 가르침 대로 하나하나 준비해 나갔다.
날이 갈 수록 처음 겪어야 하는 것에 대한 불안한 심경은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차츰차츰 조금씩 완화되어 갔다.
다들 너무나 고맙기 한량없는 친구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완벽하게 마무리 준비는 이제 귀동냥으로 얻은 정보를 통해 원시인 스스로 해야만 하는 것일테고 말이다.

건강때문에 약 12년의 세월을 방콕으로 세월을 보냈었던 원시인이 드디어 !!!
11월 8일 인천공항에서 하루를 넘나드는 타임머쉰(네팔행 비행기)를 타고서 
이젠 집밖이 아닌 무한히 드넓은 세상을 날아 네팔이라는 낯선 타국의 땅을 밟는 새로운 운명을 맞이 했던 것이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트레킹 사전 훈련

트레킹을 위한 서곡

아침 햇살에 땀 한 줄기 흘려 보내고
계단의 숨결 따라 오르막을 삼킨다
허벅지의 떨림이 나의 의지를 닮아
돌길마다 다짐이 굳게 새겨진다

종아리 어루만지며 하루를 닫으면
근육 속엔 작은 노래가 피어난다
네팔의 하늘 아래 첫 발을 내딛을 때
이 모든 고통 하나의 빛으로 찬란하리

 

 

 

나는 건강이 안좋았다가 다시 회복하는 과정에서 하루도 거름이 없이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반드시 이행하는 아침운동이 있다.
5키로 아령운동, 약식스쿼트운동, 까치발(뒤굼치들기)운동, 엎으려 팔굽혀펴기운동 
이렇게 4개로 된 근력운동 루틴이다.
근 10년을 넘게 해 오고 있었지만, 건강이 워낙 좋지 않았었던 체력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될 때 까진 정말 많은 세월이 흘렀다. 

2024년 까지는 한여름 혹서기를 제외하곤 단 하루도 거르지 않은 아침운동이었다.
올 2025년에는 혹서기에도 선풍기를 틀어놓고(그 이전에는 선풍기 없이 살았었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행했다.
현재 웨이트트레이닝은 대충 다음과 같은 상황으로 훈련하고 있다.

*기상 후 약 30 분 정도 온몸 골고루 전신 스트레칭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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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키로 아령, 각 팔당 30개, 
2. 약식스쿼트 110개
3. 까치발 들기 50개
4. 푸쉬업 3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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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루틴을 3회 반복하고 릴리스 신체 이완스트레칭 후 마친다.
좋지 않은 신체로 근력운동에 노하우가 없거나 무리를 해서 근육부상을 당하는 숱한 우여곡절도 참 많았다.
근육이 손상이 되도 그에 맞는 한도 내에서 시늉이라도 내는 식의 운동을 하는 식으로 하루도 걸르지 않았다.
즉, 운동을 하다 부상이 온 근육부상을 그냥 지속적인 운동으로 만성을 시키는 고되고 고통스런 방식이었다.

존 사노 박사의 '통증혁명'에서 차용한 나만의 근육부상회복운동이다.

 

 

10월 8일 쯤으로 기억된다.
오야지가 이제 네팔여행도 한 달 채 남지 않았으니 슬슬 동네 뒷산이라도 오르내리는 예행연습을 하라는 것이었다.
근력운동 외엔 난 그 어떤 운동도 해 본적이 없었다. 
이유가 있었다.
살이 너무 빠져서 근력운동외에 유산소운동같은 것은 의도적으로 자제를 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이었다.
점점 네팔여행 트레킹이 심적부담감으로 크게 작용했다.
몇 번이나 이쯤에서라도 그만 두겠다고 커밍아웃을 할 것인지에 두고 갈등을 했었으나, 
친구들과 함께 하고픈 원시인 자신의 욕구는 언제나 그런 갈등에서의 최후 승리자가 되었다.
한 이 삼일 동안 고민을 하다가 작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죽기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이 원시인의 상황을 이겨나가보겠다는 절대노력 확고한 신념확보였다.

10월 10일 부터 네팔트레킹에 도움일 될 법한 훈련을 무대뽀로 스타팅에 돌입했던 것이다.
아침 근력운동량은 그대로 지속을 하되, 운동량은 다음과 같이 늘려나가기로 했다.

1. 5키로 아령 50개(실제 30개)
2. 약식스쿼트 180개(실제 110개)
3. 까치발들기 120개(실제 50개)
4, 푸쉬업 40개 (실제 30개)
게다가 원래 3회 루틴에 1회 더 증가 시켜 4회를 하는 것으로 했다.
자그마치 이 근력운동 하는 소요시간은 2시간 30-40분 정도 소요되었다.

 

아침을 챙겨먹고 난 후 30분 정도 어정쩡 시간을 보내고 나면..... 대개 10시나 10시 반 정도가 되는데.....
집앞 장락공원의 계단오르기와 오르막 오르기 등등 한 바퀴가 보통 600미터 코스인데.... 4번 루틴을 돌면 
12시가 넘는다.
얼른 집에서 대충 찬물샤워를 하고, 옷갈아 입고, 외식당에 점심을 해결한다.
집에와서 오 후 2시까지 몸 휴식을 취하고....오후 걷기(워킹) 운동을 하러 나간다.
집에서 비행장까지 가는 거리는 1.3키로 왕복 2.6키로, 비행장 한바퀴를 완전하게 돌면 4키로인데, 3바퀴를 도는 것이다.
총 걷는 거리는 대략 14. 6키로가 되는데, 어림잡아 15키로를 걷는 것이다.
이 훈련을 첫날 하는 날 부터 이 양을 걸었던 게 아니라, 3-4단계씩 나눠서 목표치까지 올려나간 것이었다.

 

그러나 훈련이 문제가 아니고 정작 하체 다리 근육부상이 안되게 하는게 더욱더 큰 문제였다.
운동이 끝날 때 마다 종아리 허벅지 대퇴부, 햄스트링, 발등, 발가락등 마사지로 근육을 풀어주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 힘을 썼던 각 근육들을 조심스런 스트레칭으로 풀어주는 것 또한 훈련 못지 않게 중요했다.
거의 맨날 먹고, 운동하고, 운동 끝나면 근육 풀어주는 일, 그리고 잠. 이렇게 매일 되풀이되는 삶이 계속되었다.
먹는 것도 거의 평소에 먹는 양의 곱 정도로 더 먹게 되었고, 운동이 과한 관계로 그렇게 먹는데도 살이 빠지는 거였다.
그렇게 10월 27 정도 까지 계속 되었다.
그 후 부터는 다시 운동량을 조금씩 줄여가면서 그동안 무리수로 단련시켰던 근육기억을 이전의 운동량으로 되돌리는
이완운동을 계속했다. 

 


오늘은 11월 5일이다. 
낼 모레는 드디어 여행 출발을 하는 날이다.
오늘도 맥심정도는 아니지만 비행장 워킹 10키로를 걸었으며 
아침기상운동(근력), 오전 장락공원 계단 오르막 오르기 훈련을 했다.
아마, 6일날도 그리 할 것이며, 가는 날 7일날은 아마 하루종일 몸만 푸는 날(근육마사지 포함)이 될 것 같다.

꿈같은 네팔여행을 함에 있어서 함께 하는 친구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라는 생각보다는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라는 원시인의 신념은 그토록 무모했던 것이었다.
네팔 여행길에서의 성공이 되면 그저 한 숨 푸욱 쉬는 정도일 것이며, 만약 실패하더라도 원시인은 여한은 없을 것이다.

목적을 이루는 것 보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제발 빛으로 발하기를 빌뿐이다.

 

 

 

 

낯선 타국(네팔)에 내딛는 첫발의 설레임


오래 잠들었던 그림자 뒷목 조심스레 잡아끌고
낯선 대지의 첫 페이지 발바닥 쓰다듬듯 걷는다

방 안에 걷지 않았던 길 가두고 살았던 발끝은
바람의 허실한 은유를 따라 문지방을 넘었다

쇠락한 체력이 골목에서 떨던 시간, 두려움의 기억들
오늘은 비로소 별빛으로 잔잔하게 나를 도닥인다

잊혀질 수 없는 기억이 멈추어 선  다섯 개의 영혼들
서랍 속 묻히어 옴짝하지 못했던 웃음으로 빛이 된다

코끼리 등껍질처럼 굳어버린 실한 우정들 드뎌 !!!
종잇장 해묵어 투박하게 펴지듯 가지결을 드러내고

두려움과 설렘이 범벅된 봉우리 양얼굴에 비치어
햇살이 있어 그림자 되고,  번갈아 자꾸만 스쳐 간다

멍한 의식 설레여 뜨거워지는 바람이 되는 것이다
벌렁이는 가슴을 못내 부여잡고
좁고 어둑침침한 오래 묵은 성지_聖地의 품 떠난다

 

 

하루 전날 나는 안산의 쵸크한테 가기로 되어있다.
내 자신이 생각해 봐도 기가막히게도 스스로 혼자 여행길을 떠날 수 있는 능력이 안되는 이유때문에 그리 되었다.
원시인에 있어 이 현대판 세상은 요지경이다.
아무리 눈꺼플 까뒤집고 용을 써봐도 쉽게 원시인 의도대로 되지 않는 세상사 요지경들이다.
즉, 원시인은 쵸크에게 네팔로 가는 여행의 전모를 빌붙으려는 심산인 것이다.
결국, 그리 될 것이며, 쵸크는 엉성한 혹 하나를 단 채 원시인을 또한 네팔에 안착시킬 것이다.

 

마음이 많이 설레였다. 
손목과 목덜미의 경동맥을 살며시 짚어보는데 분명하게 혈맥의 설레임이 초미의 손끝감각에 어리어 포착된다.
그도 그럴것이 단순한 설레임이 아닐 것이란 의미를 차츰차츰 식어가는 노옹의 혈맥이 한 번 용을 써보는 것이리다.
7일 13시 경쯤 쵸크를 만났고 그와 상상을 초월하는 기막힌 점심,저녁을 했으며, 또한 차 한잔의 묘를 마셨다.


역시 원시인의 오랫만의 첫 해외 여행길은 그다지 순탄하지가 않았다.
카투만두 공항에 도착 전방 54Km 를 남겨두고, 20키로미터의 거리의 길이로 약 6000미터 상공에서 하염없이
비행기는 돌고 도는 것이었다. 
한바퀴 소요시간 7분, 18바퀴를 돌았으며, 결국 두 시간 넘게 고추잠자리처럼 뱅뱅 돌다가 델리공항
으로 착륙변경해서 일단 땅에 내렸다. 연료문제때문이었다. 
착륙하지 못했던 것은 야간 비행이착륙자동항법시스템이 고장난 것이었고, 공중을 선회하다 델리에 착륙한 것은
연료가 바닥이 났기 때문이었다.
대충, 6시간이 걸려야 하는 비행시간은 13시간이 소요되어서 가까스로 네팔 카투만두 공항에 착륙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밤이 늦어서야 친구 다섯명은 그렇게 공항에서 해후를 했다.
이제 부터 여기 원시인은 발을 내딛는 곳에서 부터 꿈을 꾸게 될 것이며, 이곳은 바로 네팔이라는 나라였다.

 

 

 

카투만두공항에서의 해후(좌로 부터 박교수, 쵸크, 오야지,홍길동,원시인)

 

 

오야지 집 화장실에서 뒷편 창문으로 보이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다. 우리나라 1970년대 후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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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글은 일반적인 스케즐이나 또는 다양한 관광에 대한 기술을 하지않고,  
마르디히말 트레킹에 대한 것만 요약적으로 간단하게 쓸 것이며, 
친우들이 보내주었던 사진들을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을 고르고 골라 적절하게 포팅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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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 혹은 카레에서 마르디히말 베이스캠프까지 오르는 트레킹 코스 트랙의 상세도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서 1박 

 

네팔에 도착한 이후로 그 다음날 우리는 여유있게 아침에 일어나 관광을 했고(휴식차원에서) 
오야지가 심사숙고해서 배려해준 멋있고 맛있는 식사들을 체험하면서 하루를 노닐었다. 

2박 3일째 되는 날 부터 두려움반 설레임반으로 점철된 본격적인 트레킹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카레(Kahre)라는 곳에서 포터들과 데땅뜨를 하고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어느 작은 마을 골목으로 접어들어가면서 오스트레일리안 캠프까지 가는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 것이었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약 2.3키로 정도의 거리인 한시간 반 정도의 짧은 코스다. 
짧은 거리였고,  오르는 코스는 계단형식으로 잘 축조되어 있어서 험한 길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종일관 잠시 여유를 가질만한 평지가 없이 오스트레일리안 캠프까지 줄곧 꽤 가파른 경사의 코스였다.
처음 맞닥뜨린  짧은 코스를 마지고, 캠프에 안착했지만, 자신감을 갖기엔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했다.
그만큼 가볍다라고 판단되는 코스인데도 원시인에겐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트레킹이었기 때문이었다.
선두와 중간트래커들이 좀 빠르다는 체감이었는데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원시인은 굉장히 힘이 들었다. 
그러나 처지지는 않았으며, 나많의 패턴대로 유지하면서 캠프까지는 일단 성공했다.

우리는 오스트레일리안에서 스케즐상 일박을 하는 거였다. 
오스트레일이아 캠프에서는 그곳 세프와 포터들이 합심해서 준비한 닭죽으로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그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배꼽이 뽀롱 튀어나올 정도로 두둑이 배부르게 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커피타임을 가졌고, 각자 숙소로 돌아가 씻고 잠을 자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아주 짧은 짬의 시간에 잠시 어둑컴컴한 캠프 아래와 두루두루 희미하게 보이는 야경들, 
그리고 하늘의 별들을 보기 위해 뒤로 고개를 꺽었다.
별들은 초롱초롱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 반짝 거렸으며, 낯짝이 창백한 별은 하나도 눈에 띄질 않았다.
흐흠 하고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여쉬어봤다.  
청정무결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향기를 머금은 채 빨려 들어왔다.
원시인은 순간, 자신이 존재하는 그곳 세상의 존재에 대해서 문득 순간적으로 생각이 떠올랐다.
이곳 세상의 존재가 이렇게 청정하다면, 
원시인도 그 속에 묻혀 있는 한 반드시 청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머리에 떠올랐다.
숨을 거듭쉴 때 마다, 자신의 몸이 마치 순도 백프로 맑은 수정으로 변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정도면 충분히 존재할 만하고, 또한 그 존재의 명분이 되기 위해 힘들어도 애써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새벽 아마 4시 조금 넘어서 기상을 했다. 
캠프 뒷쪽으로 올라가 아랫세상을 고요하게 덮고 있는 기가막힌 운무를 보려함이었으며, 
이 세상에서 느껴 볼 수 있는 지상최고의 느낌을 마음과 휴대폰 기억장치에 각인하기 위해서였다.
그 시각에 사방을 둘러봐도 천혜의 황홀한 경관은 정말 장관이었다.
일출시각이 되면서 운무의 끝 운평선은 핏빛으로 물들어 갔고, 한 참 후엔 넋잃고 바라보는 인간의 가슴속으로
핏덩이같은 해가 솟아 올랐다.
왼쪽 편으로 손에 만져질 듯 가깝게 보이는 마차푸차레 봉오리가 신비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출의 시간경과에 따라 마차푸차레 봉우리는 시시각각으로 자신의 위대함을 변신으로 과시했다.

 

 

 

위 사진들은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팀원들이 찍은 많은 사진들 중 다섯장이다.

 

 

 

 

 

로우캠프까지(2박째)

두 번째 트레킹 코스는 트레킹의 의미를 절감토록 해주는 멀고도 긴 코스였다.
장장 로우캠프라는 곳까지(2박째) 15.7 키로 정도를 걸어야 하는 힘들고 지리한 여정의 코스였다.
솔직히 전날 저녁을 먹고 취한 수면은 고작 제대로 잔 시간을 따지면 3시간이 채 안되어서 체력에 신경이 쓰였다.
다들 코를 골면서 잘 들 자는데, 원시인은 왜 그리 잠이 어설픈지 모를일이었다.
원래 성격이 민감해서 잠을 자는 환경이 변하면 쉽게 잘 잘 못 이루는 데다가 깊은 잠을 못 잔다.

약, 로우캠프까지 1키로 정도 전방쯤에서 몸에 약간 미세하게 이상 증후가 느껴졌다. 
눈앞에 보이는 사물들이 흐릿하고 코스 정면 쪽으로 보이는 마차푸차레 봉우리의 눈들이 이상하게 매우 강한
하얀 불빛처럼 보였고, 그래서 눈을 뜨기기 힘들었다.
고도는 약 2천5백 정도였던 것 같은데, 약간 고산증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의식이 들었다.
그러나 기타 다른 증상이나 의식의 흐림, 신체적 통증및 메스꺼움, 두통같은 증상은 전혀 없었다. 
그다지 전신의 피로도도 없었는데, 오야지가 고산증에 대한 가벼운 증상일 수 있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조금 호흡을 가다듬고 쉬니까 그런 증상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고도 3천미터에 달하는 로우캠프에 우리 팀원들은 무사히 안착했고, 여장을 풀자 마자 양지바른 곳에 놓여 있는
탁자에 앉아 감격스러움과 더불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유려한 여유를 따끈한 차 한잔과 더불어 즐겼다.
여튼 원시인은 스스로도 불안불안한 심리로 트레킹을 하는 상황이었지만, 나름 멋지고 성공적으로(스스로 자칭) 
2일차 트레킹 여정을 완수했던 것이다.

마차푸차레 배경을 뒤로 대막가지 스틱을 잡고 있는 사랑의 쵸크

좌에는 홍장미가 우에는 백장미가 여신의 모습으로 그 옆에 서근과 쵸크

 

모든 일정을 마치고 떠나올 때 오야지 집 앞에서 전송나와 준 검부와 포터 와 함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떠나올 때 오야지 집 앞에서 전송나와 준 검부와 포터 와 함께 

 

 

 

 

 

마지막 일박의 정점 하이캠프에 사력을(3박째)

 

로우캠프에서 하이캠프까지는 약 7키로이다. 
로우캠프에서 1박을 댓가로 해서 걸어가야하는 거리로서는 그다지 긴 코스거리는 아니었지만
그 험난함과 경사는 심하기에 일박의 댓가로서는 충분하게 타당한 코스라고 느껴졌다.
거의 계단식으로 코스가 정리되어 있다시피 했다손 쳐도 그 경사도는 거의 60,70도로 체감되었다.

 

신체에 별다른 이상징후 나타남 없는 트레킹으로 하이캠프에 도착했고, 일부 팀원들은 좀 더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해서 피로도도 잊은 채 좀 더 눈앞에 거대함으로 나타난 안나프루나와 마차푸차레를 사진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옷을 겨울옷으로 갈아입고, 차 한잔을 마시고 났는데, 자꾸만 목이 꺼끄럽게 잠기어 갔다.
결국 숙소가 정해지고 잠자리에 누울 때 쯤엔 심한 코감기 증세가 나타났고, 쉴새없이 콧물이 흘렀고, 재채기가 났다.
뜻하지 않은 복병이었다.

 

쵸크가 그 사실을 알고, 내 침대에 등짝쪽과 발쪽에 무려 핫팩을 다섯장이나 붙여줬고, 품고 자는 핫팩 한개를
침대속에 달구어 놓아주었다.
한 번 시동된 감기 증상은 그리 쉽게 호전되지 않았고, 그날밤 난 두 친구의 달콤한 코골이 소리를 들으며 단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새벽을 맞았다. 

 

전날밤 재채기만 멈추어도 산행을 하기로 약속을 했던 나는 다행이 재채기가 멈추어 새벽 4시에 일어나 일행과 함께
Upper View Point 를 향한 마지막 트레킹에 올랐다.

 

 

 

함께했던 홍장미, 멀리 뒤쪽으로 안나푸르나 봉이 보인다.

안나푸르나 봉(좌측) 마차푸차레(오른쪽) 앞으로 날으고 있는 홍길동

모두가 함께(오야지,원시인,박교수,홍장미,백장미,쵸크,홍길동)

포카라에서 카투만두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본 네팔의 히말라야 산맥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서 바라본 일출

 

 

 

 

그곳은 말하자면 마차푸차레의 발밑 정도 되는 위치인 곳이다. 
마차푸차레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으로, 그곳에서 약 500미터를 더 오르게 되면 바로 마르디히말
베이스 캠프가 있는 곳이다.

 

원시인은 Upper View Point 마지막 15 미터 남겨논 전방에서 고산증 이상징후가 나타났다.
어떤 고통스런 신체의 증상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또한 정신적인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나른해지고, 졸음이 자꾸만 심해졌다. 검부라는 포터들의 리더가 불안불안한 나를 곁에서 보디가드 하는 식으로
트레킹에 도움을 주면서 곁에 바짝 따라와 주었는데, 그에게 졸리다고 말하자, 그는 더이상 걸음을 옮기게 하지 않고
그자리에 앉아서 쉬도록 했다. 쉴새없이 그는 내 왼손바닥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자극을 주듯 문지렀고, 오른손으로는
내 등부위를 강하게 압착하면서 부벼댔다. 

 

그곳에서 잠시 쉬면서 포터가 권하는 레몬차를 천천히 연거푸 석잔을 마셨다. 
그때서야 온몸이 풀어지듯 전신에 생기가 돌아왔다. 
마지막 남은 15미터를 자력으로 오르겠다라고 검부에게 의사를 표시하고 그렇게 해서 목적한(?) 곳까지 마침내 올랐다.
원시인이 올랐던 그곳은 고도 4천미터였고, 내 자랑스런 친구 팀원들은 그보다는 더 높은 즉, 마르디히말 베이스 캠프
까지 올랐다가 다시 내 위치로 돌아왔다.

 

친구들은 고도 4500미터(마르디히말 베이스 캠프)까지 오른 것이었다. 
그곳은 우리들이 원래 설정했었던 정상적인 트레킹코스의 정점이었다.

 

내가 고도 4천미터를 오른 것 자체로 난 내자신에게 성공적인 트레킹이라고 억지 말을 하고 싶긴 하지만,
우리들 전체로의 트레킹 성공을 상징으로 친다하면 자그마한 오점을 남기고 만 것이었다.
여러모로 너무나 무모했던 원시인의 마르디히말 트레킹 등정이었다.

 

 

 

 

 

 

 

 

 

 

 

아 !  마차푸차레여 !

마차푸차레에 심히 경외스런 찬사와 더불어 
성스러운 새벽을 깨우고 소란케 한 죄스러움에 대한 경배의 예를 다하려 손을 뻗쳐보았다. 
바람도 없는 차가운 한기는 분명 심기가 불편해진 마차푸차레의 조용한 콧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속으로 매우 조심스럽게 경건한 예를 다하고, 돌아앉아 지나왔던 트레킹 흔적들의 뒷 배경을 굽어보았다.

 

 

 

 

 

왜 ? 내가 여기 있는가?
도무지 원시인이 느닷없는 존재자로서 이곳 자체에 있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자꾸만 부끄럽고 죄스럽기만 했다.
일상을 떨치고, 바람을 가르는 타임머쉰을 타고 머나먼곳을 날아 범접할 수 없는 이 곳 마르디히말에 내가 있는가.
마치 앞뒤가 안맞는 말을 구사해서 어정쩡한 느낌의 어불성설같은 느낌의 존재같은 상상이 머리속에 뱅뱅거렸다.
즉, 이곳에 원시인이 있기 위해선 좀 더 차분하고 침착하게 경건해야 했고,
진득하면서 철저하게 준비를 했었어야만 했고,
마지막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하늘과 땅의 위대함과 성스러움에 진실로 작은 인간으로 경배를 한껏 올렸어야 했다.

 

 


아 ! 마차푸차레여  /SinEun

창공의 칼날처럼
순백의 정수리로 솟아오르다 멈추어 선 장엄함이여
마차푸차레 !

모든 신들의 왕,
파괴와 재창조의 신, 억겁의 숨결을 품은 시바
마차푸차레는 시바를 낳은 어머니로서 영원이다
인간의 언어를 너머선
신들의 침묵이 성스러이 깃든 냉랭한 제단이다

새벽이면
산의 어깨 위로 천 년의 바람이 흘러 지나쳐 가며
신들의 발자국을 더듬어 갈무리 하고
황혼이면
적멸의 빛이 골짜기마다 어리듯 스며들어
하늘과 땅 사이의 문을 열고 세상을 관장한다

그 웅대한 곡선이 조용히 용트림을 털며
칼날처럼 서늘한 능선은 비장의 빛을 가른다
눈부신 빛으로 비워진 그 머리위 머리가
대지를 잉태하고
꿈을 지켜내며
영혼의 거대한 은유가 되어
반짝반짝 별들 입술 불어 품어 올리고
인간사 마음 깊숙히 가장 오래된 질문 쏟아낸다

인간은 그 앞에서 작은 한숨으로 노래할 뿐
손끝의 떨림으로
숨의 높낮이로
아무 말도 없이 울리는 심장의 북소리를 듣는다

마차푸차레여
당신의 침묵으로 수억의 신들은 하나둘 춤으로 날고
자그마한 영혼의 티끌은 그 침묵 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얼마나 작게 조촐한 꿈 꿀 수 있는 존재인지를 배운다.

당신 앞에 선 모든 어리석고 보잘 것 없는 영혼은
산이 아닌 神이 된 당신을 찬양하며 하늘을 본다.
암흑속에서 빛나는 오색 찬란한 별들의 찬양이 들리고
인간은 아주 작은 영혼으로 격에 맞는 노래를 되찾는다.

 

인도 모든 신들의 왕 시바神의 어머니라 불리는 전설을 담고 있는 마차푸차레 봉

 

 

 

이 세상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원시인의 친구들과 함께 했던 마르디히말 무대뽀 트레킹 등정은 
사실 현실이 아니라 영원한 세월이 흘러도 지워질 수 없는 황홀한 꿈이었다.
그만큼 원시인에겐 삶의 여정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던 신기루 같은 상징일 것이다.
언제 내게 이런 꿈을 다시 꿀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될것인가.
서글프게도 이제는 더이상 꿈을 꿀 수 있는 여력이 원시인의 몸엔 남아 있을 것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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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야지 : 뭐, 그다지 멋지지도 않고 스마트 하지도 않지만, 
              인간사들을 이보다 더 잘 조리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원시인 앞에 데려 와 봐라. 
              만사형통이라는 말은 바로 오야지라는 존재적 상징이다.
박교수 : 어느 누구든 이보다 더 멋진 인간이 있다면 역시 원시인 앞에 대려 와 봐라.  
              두말 하면 잔소리이지. 외모로나 상징적으로나 멋지기가 한량이 없는 친구다.
사랑의 쵸크 : 투박한 당신, 꾸밈없이 말하고 맘을 쏟아내는 당신, 
                      다소 거칠고 직선적이지만, 내 당신만큼 속정 깊은 사람을 이나이 먹도록 살면서 보지 못했오.
홍길동 : 왜 진즉, 내가 당신곁에서 버둥거리며 살지 않았었는지 이 트레킹때 깊이깊이  후회했음을 아오?. 
              멋진 친구.  情도 한껏 많은 당신 이제 부턴 나머지 여생을 항상 옆구리 맞대고 함께 했으면 좋겠오.
원시인 : 이 세상의 현실이라는 삶에 대해 철저하게 루저인 존재.  무엇하나 스스로 제대로 하는게 없다.

* 홍장미,백장미 : 당신들의 곧고 깊은 마음의 정 오래 간직하리다. 실없는 놈 용기 북돋아 줘서 고마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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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목적한 바 책 비슷한 여행기를 써 보려 했었는데,
내게는 그럴만한 재능이 없다는 걸, 여행길 내내 스스로 체험해서 익히 인지했던 바, 
그냥 세월이 흐르면 머리속 기억이 다 잡아 내지는 못할 것 같기에 

그만 작은 졸필의 기억이나마 남게 해볼려는 요량으로 신변잡기 정도의 트레킹記를 써본 것입니다. 

친구들 보시기에 무참하게 졸렬할 글이라서 

걍 나만 보려는 심사로 끄적인 글인지라 공개하기는 남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함께 동고동락한 그대들의 티없는 여정들이 

못내 애틋하게 그립고 사랑스러워서 부끄럽지만 링크를 걸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흉은 실컷 보시고, 

그 흉 본 소감은 그냥 마음속에 잔잔히 묻어 두시면 좋겠다라는 간곡한 요청을 해봅니다.


나 원시인의  영원한 친우들이여 !
언젠가 
능력없는 필력이지만 그대들을 위한 시 한 편 정도는 써 보리라 하고 맹세해봅니다. 꾸벅 !!!!

 

컴퓨터에 최적화 된 포스팅 글이기에 아마 휴대폰으로는 레이아웃들이 틀어져 보기 흉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급적 이 포스팅 글을 보려면 컴퓨터로 보기를 권합니다.

 

 

 

[ 참고 ] 

1. 이 포스팅에 게재된 사진은 단톡방에 올라온 무작위적 사진들을 *대충 원시인이 임의적으로 골랐습니다.

2. 하이캠프 글 다음에 많은 양의 사진 게재 중 사진 설명글이 없는 것은 원시인의 확실치 않은 기억때문에

   달지 못했음을 양해해 주세요. 또한 순서가 맞지 않은듯 뒤죽박죽 게재된 점은 원시인의 능력밖에라 .......

3. 나름 기억에만 의존하여 글 쓰다보니, 실제적 정보가 잘못될 수도 있는데, 읽으시다가 그런 점들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순삭하거나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4. 단톡방에 올라온 사진들은 각자 스스로 다운로드 하셔서 보관하세요.

   이 포스팅 페이지에 올려서 다운로드 할 수 있도록 해 보려 했는데, 파일 용량이 너무 커서 허용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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