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누구든, 무엇으로든 진실에 공감_共感하라
어렸을 때 부터 '독서'와 글쓰기를 참 즐겨했다.
책이 무작정 좋았고, 무던히도 책을 아끼고 사랑했다.
휘잉 삭풍이 부는 한겨울 새벽에도
책속에 묻혀 있는 감수성과 교류하고자 시간을 잊고,
포근한 사유를 맘껏 향유하곤 했다.
수 많은 세월이 흘러도
책에 대한 청년지절의 강한 욕구는 사그라들지는 않았지만,
육체적 정신적 노쇠는
그 세계(독서와 글쓰기)로 부터 조금씩 멀어지게 만들었다.
또한 지적인 욕구와 탐구적 성찰도 이제는 점점 그 자체까지도
그칠 줄 모르는 탐욕은 아닐까 하는 노파심에
뜬금없는 자책감들이 날 매섭게 때려대곤 했다.
작심을 했었는지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어느 때 부터 인가 모르게
이제는 모든 것을 비워내며 살아야 하는 것이라는
'마음 비우기' 삶을 살게 되었다.
열 개 정도의 책장에 빼곡히 채워져 소장된 책들은
모조리 시립도서관에 기증했다.
내 자신만의 충만된 정신적 세계라는 '소요_逍遙적 글쓰기'도 중단했다.
이에 도통 무료한 나날처럼 사는 것이었지만
걷기와 명상만큼은 내 삶의 주된 핵심으로, 존재의 명분 자체였다.
예전에는 책을 펼치면
곧바로 그려지는 오묘하고 광활한 세계들을 탐닉하고
그로 인해 즐거움을 얻고
정신적 희열이라는 감흥에 행복했으며 삶 자체에 만족했다.
마음 비우기 일상이 된 지금은
오직 세끼 밥 먹고 소일하다 밤이면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지극히 무료할 만큼 일상적인 삶이긴 해도
지적 자아에 대해 치열하게 담금질 하는 정신세계의 질적인 면들은
예전의 책을 읽고 글쓰기 했던 시절에 비해 조금도 못하지는 않다.
걷기와 명상이라는 덕이 아닌가 싶다.
걷기를 하면
지금껏 살아온 삶의 다양한 선험적 세계라는 축적된 사유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추상이라는 날개를 퍼덕이며 떠오르게 된다.
현재의 삶은 어떻게 자아적 형체를 모색했을까 라는 의문이 떠오르면
궁극적 단초를 어떻게 칭칭 옭아매 잡아끌어 낼 것이냐 하는 식의
사유가 몽글몽글 피어 오르게 된다.
사유는 걸핏하면 망상이 되기도 한다.
육체와 정신이 따로 노는 이원적 상태처럼
다리의 무의식적 되새김질은 과거 수 많았던 시차의 단면들을 차올린다.
때에 따라서는 의도치 않게 잡스런 망상들이,
되레 뜻하지 않게 명상이라는 질 좋은 사유로 변신하게 된다.
변화무쌍하게 희망이 반짝거리기도 하고
절망속에서 쏟아지는 오열같은 것들이 파열하며 동공속을 휘저으면
걷는 걸음이 순간 사라진 명상을 자각하느라 언뜻 절뚝 거리기도 한다.
다시금 눈부신 햇살 속에
주위의 사물들이 재탄생한 것 처럼 새로워 보이기도 하고
희끄무레하게 회색빛으로 흐린 태양빛에서도
계절에 맞는 꽃들과 향기는 촛점을 잃은 시야와 후각의 섬세함속으로
뭉개어지듯 가득차 어른 거리기도 한다.
걷기라는 걸음은
파노라마의 세계가 점유된 위치를 바꿔치기 할 때 마다 멈칫거린다.
의식은 사유의 한 복판에서 항상 필연적이면서 절정의 쟁점이고,
또 그것은 필연적인 아닌 지극히 또 다른 '이치'라는 자연적 명상이 된다.
언제나
일반적인 과거의 행태적 이미지가 씨줄과 날줄 처럼 비슷비슷하지만
섬세한 정신으로 눈여겨 보면 결코 똑같지 않는 새로움들 자체이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체득했었던 과거의 선험적·역사적 사실들이
처음엔 자의식과 지극히 닮은 초상으로 사뿐히 재현되었다가
토닥토닥 걷기라는 발길에 툭툭 채이다 보면
자신이 원치 않았던 것은 원하고자 하고픈 것으로
원했던 것은 더 욱 더 집요한 욕심으로 덧칠해진 뒤 역시 원하는 것으로....
점점 더 시간을 거슬러 사유의 뒤로 걷기를 하게 되면
또 다시 사로잡히는 그 무엇인가의 나를 잃어버리게 하는 탐욕들. !
아득히 깊은 곳에서 부터 솟아오르는 선천적 진기라는 본능에 힘입어
돌이킬 수 없이 확고한 자아의 고집불퉁이라는 탐욕들 말이다.!
그 집념에 사로잡힌 발걸음은 결국 멈추지 않으면 아니되게 되며,
눈 떠 있었어도 보이지 않았던 사물들이
의지와는 별개로 눈 떠져 사물이 보이게 되는 현실적 자각의 세계로
무너지듯 허무하게 회귀하게 된다.
어디론가 혹은 언제 그랬느냐 라는 듯이
사유속에서 결정체로 응축되어 빛이 되는 명상의 무한한 오묘함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절뚝이며 멈춰 선 다리만 휘청거린다.
그렇더라도 걷기와 그에 수반되는 명상들은
이러한 체험을 아무리 밥 먹듯 끊임없이 반복한다 해도
권태롭지 않고 달콤하면서도 마치 몽유병 증세처럼 유유자적함이다.
위에 피력한 것들 처럼
얼마 전까지 무엇보다도 소중한 내 자신의 일상적 삶이라는 모습의 전형이다.
이렇듯
아니 이렇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별수없이
삶이 유쾌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더 할 나위 없이 내겐 소중한 것이며,
그 어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도 없고 불가침적으로 신성한 것이다.
..........................

12.3 이후 분절되고 구부러져 버린 시간은
뜻하지 않게 내 일상적 평이한 삶의 현실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보이지 않게 마음속에서 검은 세계에 가려진 태양이라든가.
태양이 언제 온누리를 비치어
희망이 샘솟듯 미래의 삶을 갈구할 것인가 라든가.
참 다운 민주주의 삶을 달라고 절규에 가득 담아 외쳐대며
뇌리속에 가녀리게 어른거리는 국민들의 초상이라는 것들이
내 개인적 성스러운 일상에 질기고도 모질게 비집고 들어와 대체되어 있고
게다가 뜬금없이 눈물은 또 왜 글썽이게 하는 것인가.
그리하여 내 자신의 성스러운 '마음비우기'에서 문득 깨어나
'그래 ! 사회적 동물이어야만 해!' 라는 소신의 자각이 가슴에 요동침을 느낀다.
결코 '편향적'이어서는 아니된다는 굳은 다짐과 함께 말이다.
'나'가 오로지 '진실'이라고 하는 요소에 천착할 수 있을 것인가
'진실'이라는 형질은 지극히 '객관적 사실'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자아_自我'를 들여다 보고 지쳐 허덕일 때 까지 가위눌리듯 휘저어댄다.
- 구름에 달이 가는 것인가, 달을 스치어 구름이 가는 것인가.
바람에 갈대가 흔들리는 것인가, 갈대잎 사이로 바람이 스쳐 가는 것인가.
나는 당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가.
당신이 내 외로운 풍금소리를 어루만져 줄 수 있을 것인가. -
치열한 고뇌와 검증의 과정을 산고로 해서 결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비몽사몽 같은 석연찮은 잠에서 깨어 이마의 식은땀을 훔쳐 낸다.
어둑어둑한 천정에 흑과 백의 치열한 전투가 어지럽게 난무한다.
살며시 다가오는 새벽이 오면 어찌 됐든 결국 일어나야 한다.
갈등과 고뇌에서 얻은 참다운 '진실'덩어리를 한아름 꼬옥 안은 채 말이다
만신창이가 된 듯한 곤하고 찌부둥한 몸을 뒤척이며 새벽을 맞는다.
적나라한 사유의 진통을 겪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객관적 사실'과
그 반석위에서 다시금 담금질 해야 얻어지는 '진실'을 꽉 움켜 쥐고 말이다.
참 다운 승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진실'을 난 그렇게 힘겹게 얻은 것이다.
결국 그렇다.!
무언가는 반드시 해야만 할 듯 싶은 심정 같은 것 말이다.
선한의지와 자유의지라는 무의식적이면서도 자발적 반사신경에 의해
비로소 '성찰'이라는 결정체적 눈부신 전리품(진실)을 얻게 된다.
글쓰기를 멈추었던 내가
내란사태 이후 블로그라는 조촐한 공간에서
그때그때 마다 굴절되고 뒤틀린 시간의 연속성에 허위적거리며 짬짬이
꽤 적지 않은 글을 썼었던 것 같다.
아니 그냥 썼었던 것이 아니라,
왠지 모를 글썽거리는 눈물속에 허덕이는 가녀린 힘일지라도
써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아닌 선한의지·자유의지 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
흐흠 !!! 헌데,
당신만 그러했던 것이 아니었지 않았느냐 ! 라는 듯한
공감적 메시지를 전하는 소중한 글 하나를 온라인에서 대면 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참되고 소중한 개인적 일상을 침해받지 않으며,
맑은 미소와 행복한 절정감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진정한 사회적 유대감에 대해 결코 '무관심'해서는 지켜낼 수도 없고,
또한 지켜나가는 것 자체가 요원하다는 사실을 전해 주는 글이었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내 개인적인 사유 바탕이 원래 그렇다는 것이고
이런 졸스런 사유와 잡스런 글로 인해
혹 이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감정이입'케 하려는 의도가 결코 아니다.
글 제목처럼 그냥 '잡설'이라는 그 이상 이하도 아님을 확실하게 말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혹 이 어줍잖은 잡설을 대면하는 이가 있다면
한가지 만큼은 꼭 간절한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바라고 싶은 것이 있기는 하다.
결국, 이 세상에 함께 공존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뚜렷한 존재감이기에 그렇다.
누구든,
무엇으로든,
진실이라는 것에 공감_共感하려 끊임없이 노력하자.
1월도 벌써 중반이 넘어갔다.
머지 않아 두 달 보름 정도면 꽃들이 만발하는 생명의 계절 봄이 올것이다.
정상적이라면
대한민국의 정의가 그나마 간당간당 위태롭긴 해도 꼿꼿이 지탱해 준다면
내란사태 수괴범에 대한 탄핵은 인용될 것이 거의 확실하지 않겠는가.
그로 인해 빛나는 희망을 품고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키잡이 시대가
즉, '새로운 대통령'의 시대가 적어도 벚꽃 필 무렵쯤엔 도래할 것이리라!
.............................................................................SinEun

* 남아수독오거서_男兒須讀五車書(두보)
남자는 자고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
*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_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안중근)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아나는 것만 같다는 뜻
* 수불석권_手不釋卷(사마광)
쉬지않고 책을 읽는다라는 의미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음에서 유래됨
위 잡설의 동기부여가 된 듯한 하나의 기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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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고맙게도 가르쳐 준 것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은
공수처에 체포된 날인 지난 15일 대국민 영상 메시지를 공개했다.
'성찰하는 독서'의 중요성... 사유 없는 리더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되었다
"국민 여러분 잘 지내셨습니까?"라는 첫 문장에,
그리고 보일 듯 말듯한 그의 옅은 미소에서 몸서리가 쳐졌다.
주위에 전혀 관심이 없는,
주변 이들과 공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의 전형을 보는 듯했다.
본인이 나라를 어떻게 망쳐 놓았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이,
내 눈엔 기괴해 보일 정도였다.
영하를 밑도는 한파에,
길바닥에 나와 대통령 탄핵을 외쳐야 하는 국민들의 고통은 전혀 모르는 건가.

그의 뻔뻔한 얼굴을 보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내게 가르쳐준 몇 가지 유익한 점이 있었다는 것 또한 인정하게 되었다.
사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로
나는 정치와는 거의 담을 쌓았었다.
나를 포함해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던 적잖은 내 주변인들이
계엄령 선포 이후에 모든 뉴스와 정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 것은,
정말이지 그의 공로라고 하고 싶다.
요즘 나는
과거엔 잘 모르던 정치인에 대해서도 자주 찾아보고
지난 그의 행보까지도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음 총선을 대비해서 미리미리 사전 정보를 조금씩 모으는 중이다.
확실히 알게 됐다, '성찰하는 독서'가 왜 필요한지
한편으로는
그간 소원해졌던 글쓰기와 책 읽기를 다시 하고 있다.
인성은
공부를 얼마나 잘하느냐와는 관계가 없다.
또 물질적으로 풍요한들,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많은 '인싸'인들,
최고의 권력을 가졌던들
다양한 생각에 대한 이해와 그걸 수용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언제든 타인을 위험과 고통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일반인이 사유하지 않는다면
고작 해봐야 가족이나 친구들 정도가 불편함을 느끼게 되겠지만,
공인은 그와는 다르다.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다 못해
사회를 파국으로 치닫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대통령 같은 자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살다보면 누구라도 크고 작은 리더가 될 수 있다.
결혼하고 자녀를 기른다면 한 가족의 리더이다.
학교에서는 모둠의 조장이 되기도 하고,
회사나 사회 조직에서는 한 단계 넘어갈 때마다 직급이 생기게 된다.
사회인 아니면 가깝게 만나는 소모임에서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리더 아닌 리더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구라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판결을 받고 실형을 살게 된다면,
다량의 책을 사비를 들여서라도 넣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부디 이제는
극우성향 유튜브와 아첨하는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혼자서 책을 읽으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왜 이지경까지 오게 된 건지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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